‘큰 선생’ 교수와 ‘새끼 선생’ 과외교사 유착, 불법 레슨 만연

이찬규.이아미 2023. 12. 3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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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대 입시비리 확산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서울대·숙명여대 성악과 입시비리 의혹이 다른 전공 영역까지 번질 조짐이다. 수사 소식을 접한 다른 음악 전공 재학생이 “음악계에 입시비리 정황이 만연하다”며 교육부에 관련 의혹을 제보했고, 교육부는 자체 조사에 나섰다. 음악계에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불법 레슨이 이뤄지고 있다. 제보가 이어지면 업계 전반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교육부 사교육·입시비리대응팀은 지난 27일 서울 한 사립대 음악대학 피아노과 A교수의 불법 레슨과 입시비리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해당 조사는 한 음대 재학생 B씨의 제보로 시작됐다. B씨는 “입시비리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에 제보했다”며 A교수의 불법레슨 의혹 관련 녹음파일도 교육부에 제출했다.

중앙일보가 확보한 해당 녹음파일에서 A교수로 추정되는 인물은 “너 지금 고3인거야?” “수능은 어떻게 봤어?” “(원서) 접수는 언제까지지?” 등의 질문을 던진다. 자신을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밝힌 학생은 도흐나니의 ‘에뛰드 op28’과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 op16’을 연주했다. 연주에 대해 A교수로 추정되는 인물은 “템포가 다른 학생들보다 빠른 것 같다”며 “너는 이 곡에서 어려운 점이 뭐야”라고 질문했다. 직접 연주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현행 학원법상 교수는 개인 과외를 할 수 없다. 게다가 교육부에 따르면, 녹음파일 속 학생이 연주한 곡들은 A교수가 소속된 대학교의 2021학년도 음대 입시 실기곡이었고 A교수는 당시 실기시험 평가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A교수 측은 “입시생이 아닌 대학생을 지도한 것이다. 불법 레슨을 한 적이 없다”며 해당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교육부는 조사를 통해 진위를 확인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조사 착수 소식이 전해지면서 음악계와 입시 업계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한 입시 업계 관계자는 “대학교수의 불법레슨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 관행”이라며 “입시비리 의혹 제보가 이어진다면 충격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는 C양은 “교수와의 1대1 레슨은 실력 향상과 대입 성공을 위해 놓칠 수 없는 기회”라며 “대놓고 얘기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주변 수험생들 상당수는 대학교수에게 몰래 레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음악계의 입시 비리가 ‘큰 선생님’(대학 교수)과 ‘새끼 선생님’(음대 출신 개인 과외 교사) 등이 쉽게 유착하는 음악계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큰 선생님은 1시간 이내로 진행되는 레슨 한번당 수십만원의 돈을 받고, 새끼 선생님은 이보다 저렴한 강습료를 받으며 장기간에 걸쳐 입시생들의 연습을 도맡는다.

이 과정에서 입시생과 밀착한 관계를 형성한 새끼 선생님이 큰 선생님과의 연결고리를 놔주는 일이 벌어진다. 서울의 한 사립대 음대생 D씨는 “새끼 선생님에게 개인 레슨을 1년 정도 받던 중 같이 연주했던 지인이라며 대학교수를 소개했고, 개인 레슨을 권유 받았다”고 말했다. 음대 졸업생 E씨 역시 “작은(새끼) 선생님이 자신도 큰 선생님에게 1대1 레슨을 받았다고 했다. 입시생 입장에서 혹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음대 입시생이 모인 카페에서도 “서울로 오면 대학교수를 큰 선생님으로 연결해줄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고등학교 교사가 입시생과 대학교수 사이에서 불법과외를 위한 다리를 놓아주는 경우도 있다. 예술고 졸업생인 F씨는 “전공별 담당 선생님께 부탁하면, 대학교수와의 불법과외를 주선해줬다”며 “다른 예술고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불법과외를 알선하는 일이 흔하다”고 전했다.

한편 서울대·숙명여대 성악과 입시 비리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대장 이충섭)는 지난 10월 숙명여대 입학처 등을, 지난 12일 서울대 입학처 등을 압수수색했다. 또 서울대 입시 외부심사 위원인 가천·강원·울산대 소속 교수에 대한 강제수사도 진행했다. 다만 아직 수사 의뢰나 고소 등이 이뤄지거나 구체적인 의혹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라, 다른 분야에 대한 수사 확대보다는 기존 수사부터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조사 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할지, 직접 조사를 계속할지 확정하지 못했다”며 “사실관계를 더 검토한 뒤에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찬규·이아미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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