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테이너’가 뭔지 몰라요…나를 알고 싶어 그림 그려요: 화가가 된 배우 박신양 인터뷰
화가로 변신한 배우 박신양
미술 작업을 하는 연예인을 가리키는 말 ‘아트테이너(아트+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화가로서 최근 첫 개인전을 시작한 배우 박신양(55)은 이렇게 답했다. 개인전이 열리는 경기도 평택시 mM아트센터(엠엠아트센터)에서였다. 이곳은 평택 최초의 미술관으로, 철강업체의 옛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난해 개관했다.
전시장 1층에 작업실 고스란히 옮겨와
“작업실에 있는 물건을 모두 옮겨왔어요. 여기 작업실을 차린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어요. 안동 작업실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는데, 저는 주로 밤에 작업을 해서 거의 매일 밤을 새니까 낮에 손님 맞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열심히 4∼5시간 이야기하고 나면 결론은 ‘진짜 네가 그리는 것 맞냐’ 그걸 확인하는 것 하나에요. 정말 허망하죠. 의혹을 가진 분들한테 작가 노트를 프린트해서 나눠주면서 내가 어떤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는지 얘기하려고 노력해 왔어요. 그러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책을 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죠. (평소 알던) 민음사 양희정 부장님께 쉬는 편집자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청했더니 일단 원고를 보내라고 하셔서 읽어 보시고 ‘우리 출판사에서 내도 되겠다’고 하셨어요. 처음엔 농담하시는 건 줄 알았어요. 민음사가 아무 책이나 내주는 데도 아니고. 그렇게 (철학자) 김동훈 선생님도 만나게 되었고 너무 좋았습니다. 사람을 (편견으로) 단정하지 않고 일단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려고 하시는 분들을 처음 만난 거예요.”
그렇게 박신양은 철학자 김동훈과 공저로 지난 20일 『제4의 벽』(책사진)을 내게 되었다. 그가 10여 년간 그려온 그림 중 131점을 수록했다. 그의 인생관과 예술관을 담은 에세이와 그의 그림에 대한 김동훈의 에세이가 교차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비전공자를 작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현대미술의 정신에 어긋납니다. 다만 연예인들은 그들의 유명세로 너무 손쉽게 전시 플랫폼과 시장을 얻으니, 거기에 제도권 미술가들이 불편함을 느끼죠. 시간 들여 작업 퀄리티와 철학을 구축했는지도 의문이고요. 하지만 차별주의자가 되기는 싫으니 다들 입 다물고 있는 겁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박신양이 차별화되는 부분은 그가 그림을 시작한지 10년이지만 그동안 한 번도 개인전을 연 적이 없고 판매한 적도 없다는 것, 2021년 안동대 서양화 전공 석사과정에 입학하는 등 계속 탐구하는 자세를 지녀왔다는 것, 책을 통해 연기와 연결된 자신의 회화 철학을 전문적인 미학 용어는 구사하지 않을지언정 뚜렷한 주관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진정성이다.
철학자 김동훈과 예술관 담은 책 출간
책에 따르면 박신양은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 후 “1991년 소련 붕괴 후 혼란 속에 내던져진 러시아에서 예술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궁금해서” 유학을 떠나 러시아 쉐프킨 연극대학교와 슈킨 연극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유학 중에 러시아 화가 니콜라이 레릭의 그림을 보고 경이로웠던 경험을 하며 ‘예술과 그림과 표현이 보는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었다.
그러나 한동안은 연기에만 전념했다. 귀국해서 ‘편지’(1997), ‘약속’(1998), ‘범죄의 재구성’(2004), ‘박수건달’(2013) 등의 영화와 ‘파리의 연인’(2004), ‘쩐의 전쟁’(2007), ‘바람의 화원’(2008), ‘싸인’(2011), ‘동네 변호사 조들호 1,2’(2016,2019) 등의 TV 드라마에 주연으로 활약했다. 그러다가 40대 중반인 2013년 러시아 친구 키릴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의 얼굴을 그리는 것부터 그림을 시작했다. 갑상선 이상에 시달리며 몸이 피폐해진 것도 이유였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Q : 책 서문에 ‘나는 내가 연기하고 만들었던 캐릭터들이 아니다. (…) 나를 캐릭터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이 그림을 그리는 주된 목적입니까.
A : “그것은 두 번째 목적이고 첫 번째 목적은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입니다. 그 질문은 사실 주로 어렸을 때 품는 질문이잖아요. 시간 되면 슬금슬금 없어져야 되는 건데 안 없어지고 오랫동안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스무 살 서른 살도 아니고 웃기죠. 거기에다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라든가… 뿐만 아니라 뭔가 원형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이 때문에 그리는 것 같습니다.”
A : “어느 집 거실에 걸릴 기대는 전혀 없어요. 사람들이 ‘그림이 너무 크다, 50호-60호 정도로 그려야 팔리지.’ ‘캔버스 가장자리까지 잘 칠해야 가치가 있지.’ 그런 말들 많이 하시는데, 제 그림들 보면 알겠지만 가장자리 안 칠한 것이 많고요. 그러니까 팔 생각이 없는 겁니다. 그래야만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나의 온전한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하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없는 거죠. 팔지는 않는 반면에,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연기든 그림이든 모든 표현은 사람들한테 많이 보여주고 정서 반응이 일어나게 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여줄 수 있을지, 심지어 (컨테이너) 트럭에 실어서 유랑극단처럼 전국 장터마다 다니며 보여줄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Q : 전시작 중에 사과 연작이 있는데요. 초등학교 때 사과를 그렸다가 선생님에게 '이것도 그림이냐'고 혼난 이후 사과를 그리지 못하다가 두봉 주교님(한국의 가톨릭 선교사)이 선물해 주신 두 알의 사과를 그리기 위해 다시 사과를 그리게 되었다는 책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두봉 주교님은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보고 무작정 찾아가서 뵈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프랑스 분으로 이제 94세이신데 유머러스하면서 진지한 분이세요. 그분은 TV를 안 봐서 제가 배우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두번째 뵈러 갔을 때 제가 지난번에 했던 말을 너무 잘 기억하시는 거예요.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부분, 자신이 필요한 것 아니면 상대방에게 아무 관심 없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데 두봉 주교님은 그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필요한 것과 상대방의 아픔에 집중하시는 거예요. 평생 자기를 위한 여행도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분인데, 전주의 교구에 젊은 신부님들한테 강의하러 가시는 여행에 제가 운전수로 따라간 적이 있어요. 그때도 계속 내 걱정을 해주시는 거예요. '허리 아픈 건 어떠냐, 갑상선은…' 다 기억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리고 틈만 나면 ‘나는 행복하다’ 하시는데,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만, 그분의 행복하다는 말씀은 전적으로 믿음이 갔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듣고 보고 사람들이 강요하는 또는 고수하는 그런 행복하고는 거리가 먼 행복이었어요"
Q : 최근 4년 동안 연기를 별로 안 했는데, 아예 그림에 전념하려는 것인지요.
A : “그간 별로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어서 그랬어요. 연기로 표현하는 것에 어울리는 것은 연기로 해야 하고 그림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은 그림으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영화나 드라마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죠. 왜냐하면 1.5∼2시간 안에 다 이해할 수 있는 범위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림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 오히려 더 깊고 넓죠.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며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데 뭔가가 일어난다’라고 할 때 정말 좋습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연기로, 영화로, 드라마로 하는 게 필요할 경우는 앞으로도 연기를 할 생각이지만, 그렇지 않은데 일부러 할 생각은 없습니다.”
평택=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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