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세계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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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88올림픽으로 알려진 한국
산업화·민주화 이어 문화로도 주목
세계적인 역할 자임하는 건 긍정적
‘최선 외교=국민적 합의’도 새겨야
」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한국은 세계와 다시 한번 극적인 조우를 한다. 88 서울올림픽은 적어도 현실 세계에서 반세기에 걸친 이념 논쟁을 정리하여 주었고 동서 냉전에 해빙의 기회가 되었다. 한국전쟁으로 냉전이 격화되었다면 88 올림픽은 냉전이 해소되는 계기였다. 흔히 공산권의 와해를 몇몇 주역들의 역할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레이건 대통령의 전략, 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재건 정책 등도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 말 이후 일어난 세계 정치 지형의 대변동은 서울올림픽이 구(舊)공산권에 촉발한 대중적인 반응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막연한 추측이 아니다. 큰 변혁 이후 현지에서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직접 확인한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측근 지식인 한 분은 이런 말을 하였다. “서울올림픽은 무엇보다도 구동구권의 대중 차원에서 큰 충격이었다. 본인은 물론 그 이전부터 국가 주도 계획 경제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서울올림픽 이후 대중들의 반응은 너무 강렬한 것이어서 소신을 주장할 용기를 갖게 되었다.” 당시 중학생이던 중국의 언론인은 올림픽 개막식을 TV로 본 소감을 이렇게 썼다. “한마디로 서울의 거리는 환상이었고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후 한국은 한반도에서 남북한 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하여 평화를 기하고, 세계에서 위상과 역할을 증대하여 왔다. 대조적으로 북한은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최소한으로 막고 자신에만 집착을 하는 고립을 추구하여왔다. 말하자면 북한 정권은 스스로가 세계이어서 북한이 없다면 세계도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국시로 삼는다. 한국은 한동안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자임하였는데 최근에는 위상과 역할을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대하여 스스로를 ‘세계적인 기축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간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을 하였고 최근에는 특히 문화의 영역에서 활발한 진출로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견지에서 한국이 세계적인 역할을 자임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다른 한편 걱정이 앞선다. 세계는 우아한 의전이 기다리는 곳이 아니고, 항상 유동적이며 비전과 실익이 첨예한 갈등을 빚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과연 이런 세계에서 자신의 이상과 이해관계를 바로 정의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능력을 투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전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전, 도움 될 “한 말씀을” 해달라는 자리에서 해외 방문을 삼가시라는 고언을 드린 일이 있다. 시간과 경비의 문제가 아니었다. 목전 사안의 경중을 구별 못 하는 권력의 허위의식에 대한 경계의 뜻이었다. “외교만 하면 좋겠다”고 한 대통령도 있었다고 한다. 국제 사정에 통달해서 그런 말씀을 했을까? “최선의 외교정책이란 국민적인 합의”라는 대전 후 첫 오스트리아 연방 수상 레오폴드 피글의 말을 상기할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계의 발견도 본국에서 시작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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