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의 시사일본어] 뒷돈
현지 언론에는 ‘우라가네(裏金)’ 관련 뉴스가 연일 터져나온다. 직역하면 ‘뒷돈’이란 뜻이다. 일본어 그대로 우리에게 익숙한 ‘와이로(賄賂)’, 즉 뇌물로 조성되거나 투명하게 회계 처리를 하지 않은 ‘비자금’을 뜻한다. 그동안 공공기관, 기업, 각종 단체 등에서 부정한 경리 조작을 통해 불법 자금을 만드는 사례가 꽤 있었다.
자민당 비자금이 그 전형적인 형태다. 아베파는 정치자금 모금 행사(파티)를 주최하며 ‘파티권(券)’을 할당량 이상 판 소속 의원들에게 초과분의 돈을 다시 넘겨줬다. 당사자인 국회의원과 자민당은 정치자금 결산 보고서는 물론 개별 의원의 장부에도 기재하지 않고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18∼2022년 5년 동안 아베파 의원들이 조성한 금액은 약 5억 엔(약 46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이번 비자금 사태의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는 예단하기 이르지만, 자민당 출범 이후 최대 위기라는 데 이견이 없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보수 대통합으로 탄생한 자민당체제가 이제 생명을 다한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자민당 정권이 무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민당이 야당에 정권을 내준 것은 1993년과 2009년의 두 차례 5년 정도다. 취임 3년차를 맞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직격탄을 맞았다. 비자금 의혹이 불거지며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했다. 그가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고 자민당을 다시 세울 수 있을까.
2024년 4월 총선이 다가온 우리나라에도 비자금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자국 이익을 위해 지구촌 곳곳에서 총성이 울리는 약육강식의 시대를 맞아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정치인이 더욱 필요한 시기다. 흔히 정치는 ‘차악(次惡)’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최선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차선(次善)’의 인물을 뽑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기대 만큼 쉽지 않은 일일 테지만.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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