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의 시사일본어] 뒷돈

2023. 12. 3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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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일본어
일본 검찰의 집권당 비자금 수사가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다.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을 수사 중인 도쿄지검은 당내 최대 파벌 아베파의 핵심인 마쓰노 히로카즈 전 관방장관, 다카기 쓰요시 전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 세코 히로시게 전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 시오노야 류 전 문부과학상을 최근 조사했다. 정부와 여당에서 요직을 맡았던 실세 정치인들이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지 언론에는 ‘우라가네(裏金)’ 관련 뉴스가 연일 터져나온다. 직역하면 ‘뒷돈’이란 뜻이다. 일본어 그대로 우리에게 익숙한 ‘와이로(賄賂)’, 즉 뇌물로 조성되거나 투명하게 회계 처리를 하지 않은 ‘비자금’을 뜻한다. 그동안 공공기관, 기업, 각종 단체 등에서 부정한 경리 조작을 통해 불법 자금을 만드는 사례가 꽤 있었다.

자민당 비자금이 그 전형적인 형태다. 아베파는 정치자금 모금 행사(파티)를 주최하며 ‘파티권(券)’을 할당량 이상 판 소속 의원들에게 초과분의 돈을 다시 넘겨줬다. 당사자인 국회의원과 자민당은 정치자금 결산 보고서는 물론 개별 의원의 장부에도 기재하지 않고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18∼2022년 5년 동안 아베파 의원들이 조성한 금액은 약 5억 엔(약 46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이번 비자금 사태의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는 예단하기 이르지만, 자민당 출범 이후 최대 위기라는 데 이견이 없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보수 대통합으로 탄생한 자민당체제가 이제 생명을 다한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자민당 정권이 무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민당이 야당에 정권을 내준 것은 1993년과 2009년의 두 차례 5년 정도다. 취임 3년차를 맞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직격탄을 맞았다. 비자금 의혹이 불거지며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했다. 그가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고 자민당을 다시 세울 수 있을까.

2024년 4월 총선이 다가온 우리나라에도 비자금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자국 이익을 위해 지구촌 곳곳에서 총성이 울리는 약육강식의 시대를 맞아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정치인이 더욱 필요한 시기다. 흔히 정치는 ‘차악(次惡)’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최선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차선(次善)’의 인물을 뽑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기대 만큼 쉽지 않은 일일 테지만.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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