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영화 키워드 ‘시대정신’…봉준호·박찬욱 누가 웃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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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극장가가 기사회생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 한 해 국내 총 관객수는 1억6000만 명이 조금 넘는 수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 이전엔 2억 명을 웃돌았으니 80% 선이 회복된 셈이다. 올 초반까지 분위기는 매우 우울하고 심각했었다. 극장이 거의 모두 문을 닫을 위기였고 영화 산업 자체가 폐업하기 직전까지 갔었다. 특히 ‘거미집’ ‘소년들’ 등 추석 무렵 개봉됐던 영화들이 완성도가 뛰어났음에도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위기 의식은 극에 달했었다.
‘서울의 봄’ ‘노량’ 흥행 덕에 극장가 활기
내년의 화두는 ‘부활’보다 ‘시대정신’으로 보인다. 대체로 영화의 흥행은 낮은 수준에서는 동 세대의 트렌드를 얼마나 잘 캐치하고 있느냐부터 높은 수준으로 볼 때는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과제를 영화가 얼마나 잘, 예술적으로 투영시키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2023년 한해 흥행작 중 전자는 ‘30일’같은 로맨틱 코미디였으며 후자는 ‘서울의 봄’이나 ‘노량’같은 작품이었던 셈이다. 코로나19의 후유증이 엄청났던 2022년 초반에도 ‘헌트’같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던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2024년 상반기 흥행을 이끌 작품 역시 두 편이다. 해외 작품 한 편과 국내 감독의 작품 한 편이다. 캐나다 드니 빌뇌브의 ‘듄 파트2’는 올 연말에 개봉될 계획이었다가 내년 2월로 ‘도망간’ 케이스이지만 결국 매우 영리한 선택을 한 셈이다. 사실 국내 배급 일정보다는 할리우드의 배우 및 작가 파업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어쨌든 내년 2월이라면 극장가가 무주공산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이 ‘듄2’가 독식할 가능성 또한 높게 점쳐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티모시 살라메. 젊은 층을 넘어 주부층 관객들조차 열렬히 사모하는 대상이다. ‘듄’ 전편은 2021년 코로나 한 복판의 띄어 앉기와 1일 저녁 상영 시간 축소라는 악 조건 속에서 개봉돼 170만 정도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지만 이번 ‘듄2’는 2024년 극장가의 확실한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웅장한 비주얼과 인류 구원의 종교적, 철학적 의미 까지를 담고 있는 내용인 데다 요즘의 할리우드가 주요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는 ‘반란과 혁명’을 키워드로 삼고 있어 지식인층에게도 꽤나 어필할 가능성이 높다. ‘듄2’는 주인공 폴(티모시 살라메)이 자신의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멸족시키고 왕인 아버지(오스카 아이작)를 살해한 하코네 가문에 맞서 사막의 사람들(배두인 족을 상징)인 프레멘들을 조직해 게릴라 전투를 이어간다는 내용이다. ‘정의를 위한 반란과 혁명’은 국내 극장가에서도 심상치 않은 흥행 코드이다. ‘듄2’는 특히 티켓 값이 비싼 아이맥스 관에서의 상영에 관객이 몰릴 작품이다. 매출액이 더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최민식·박해일 ‘행복의 나라로’도 대기 중
‘미키17’은 원래 『미키7』이 원작이다. 에드워드 애슈턴이 쓴 SF소설이다. 미키7이든 17이든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복제인간의 프린트 넘버다. 7번째 미키이고 17번째 미키라는 얘기이다. 중요한 것은 미키7이 7이 되기 위해서는 미키6이 완전히 소멸돼야 한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실수인지 고의인지 미키7이 처리되지 않은 채 미키8이 나오게 된다. 그 과정에서 7과 8의 기억이 중복되고 그럼으로써 정체성의 일대 혼란이 야기되며 복제인간 사회와 시스템이 점점 교란되게 된다. 아마도 봉준호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현대인의 정체성, 곧 과연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서 가장 똑똑한 영화감독으로 꼽히는 봉준호는 ‘가장’ 철학적이고 ‘가장’ 정치적인 얘기를 ‘가장’ 상업적인 재미로 포장해 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번 ‘미키17’의 흥행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찬욱은 제작 면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는데, 2024년 상반기에 선보일 김상만 감독의 신작 ‘전, 란’은 박찬욱의 영화사 모호필름이 제작하는 것이다. 강동원과 박정민이 나온다. 넷플릭스 공개작이다. 박찬욱의 영화들은 극장에서 보여지지는 않지만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도를 상당히 높일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궁극적으로 국내 영화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24년에는 극장과 OTT가 적대적 공생 관계를 넘어 비적대적 공생 관계로 넘어 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024년에도 프랜차이즈 흥행 영화가 돌풍을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마동석 주연의 ‘범죄도시’ 시리즈는 이제 나오기만 하면 관객들이 몰리는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 중 2편과 3편은 모두 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번 4편은 5월 개봉 예정이고 이 영화의 5월 배급 전략은 다가오는 여름 시장의 붐을 일으키겠다는 것이어서 그 휘발성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밖에도 진작에 완성됐지만 코로나로 3년째 잠자고 있는 최민식·박해일 주연의 ‘행복의 나라로’도 대기 중이다. 외화로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스핀 오프인 ‘트랜스포머 ONE’이 눈에 띈다. ‘글래디에이터2’도 있고 ‘에이리언’ 시리즈의 새로운 작품 ‘에이리언 : 로물루스’도 기다리고 있다. 성찬이다. 세상은 넓고 볼 만한 영화들이 넘친다. 부활하되 어떤 시대정신을 지닌 영화들이 수위를 차지할 것인가. 영화 흥행은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모르는 것이라는 속어가 있다. 그럼에도 많은 영화 팬들이 진작부터 2024년을 기다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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