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잔에 3000원, 수십개 자판기…뮤지컬 배우가 낸 와인바 [여기 힙해]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가 내려다보이는 건물 3층을 들어가자 탁 트인 공간이 나옵니다. 갈색 벽돌로 유럽 대학 도서관처럼 따뜻하게 실내장식 돼 있습니다. 큰 유리창을 통해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앉을 수 있는 의자, 벽면을 가득 채운 와인병, 가장 신기한 것은 와인병 앞에 붙은 수도꼭지입니다. 여기는 수십개의 와인 자판기를 통해, 1000여 종의 와인을 잔으로 파는 ‘탭샵바’입니다.
이용 방법은 간단합니다. 계산대에서 먼저 금액을 충전합니다. 편안하게 와인들을 둘러봅니다. 포도 품종뿐 아니라 국가별로 와인이 분류돼 있습니다. 원하는 와인 버튼을 누릅니다. 해당 와인에 대한 설명이 뜹니다. ‘테이스팅’ 버튼과 ‘와인 한잔’ 버튼이 있습니다. 테이스팅은 30ml, 와인 한잔은 80ml입니다. 시음은 1000원부터, 와인 한잔은 3000원부터 가능합니다. 샤또 무똥 로칠드, 샤또 라투르 등 5대 샤또도 모두 잔으로 가능합니다. 병으로 사면 현장에서 추가 비용 없이 안주와 함께 마실 수 있습니다. 샤또 마고는 1병에 120만원, 돔 페리뇽은 36만원입니다. 일반 와인샵 가격과 비슷하거나, 저렴합니다.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와 함께 간다면, 위스키·사케·맥주도 준비돼 있습니다. 미국 버번 3대 장 중 와일드터키 81 프루프의 테이스팅 가격은 3300원, 싱글몰트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은 8700원입니다.
안주 가격도 저렴합니다. 탭샵바에 들어가면 술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오이스터 바(Oyster Bar)’입니다. 통영 양식장에서 매일 싱싱한 굴이 직배송됩니다. 양식장이 일요일에는 쉬기 때문에 월요일에는 굴 수급이 안 돼 판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굴은 일반 굴보다 크기가 큰 ‘삼배체 굴’입니다. 번식 능력을 없앤 품종 개량 굴로, 산란을 막아 독소가 없고, 번식을 안 해 크기가 2~3배 크고 영양분도 많습니다. 깨끗히 손질한 굴 3개에 1만2900원입니다. 2만원이면 굴과 와인, 위스키까지 맛볼 수 있습니다. 굴을 듬뿍 넣은 라면은 1만900원, 루꼴라 치즈를 넣은 떡볶이는 8900원입니다. 어지간한 강남 분식집 떡볶이보다 쌉니다.
이곳을 연 사람은 나기정 대표입니다. 그의 이력은 매우 특이합니다. 원래는 뮤지컬 배우였습니다. 중학교 때 ‘하드락 카페’를 보고 배우의 꿈을 꾼 그는 연극과에 진학했습니다. 학교 무대, 시 극단에서 활동했고, 단역이지만 영화에도 출연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막상 해보니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대에 올라가면 사람들 표정이 다 보였어요. 역할에 몰두해야 하는데, 관객들 반응을 신경 쓰느라 대사를 놓치기도 했죠.”
그는 고독한 배우보단 사람과의 술자리를 좋았습니다. 그래서 집어든 것이 ‘와인’, 그렇게 2005년 영국 유학을 떠납니다. 왕립 농업 대학(Royal Agricultural University)에서 와인 MBA 과정을 마쳤습니다. 지인의 의류 수입업을 도우며 학비를 벌었다고 합니다. 당시 MBA 졸업 논문 주제가 ‘한국시장 와인 대중화’. 그의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첫 가게는 2013년 홍대에 문을 연 ‘와인주막차차’입니다. 그는 “와인이 지닌 무겁고,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막’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라는 뜻의 우리말인 ‘차차’를 합쳐서 이름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차’는 차돌박이를 말합니다. 차돌 된장, 차돌 라면 등이 대표 메뉴입니다. 와인주막차차는 현재 5개 매장을 갖고 있습니다. 명동점은 인근 젊은 직장인들의 회식 장소로 선호된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서 조금 더 대중화된 공간이 ‘탭샵바’입니다. 도산대로 외에도 동대문, 청계천에 매장이 있습니다. 탭샵바 도산의 실내장식 주재료가 벽돌이라면, 동대문은 콘크리트와 철, 청계천점은 나무입니다. 카페 같은 공간에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1잔에 3000원으로 와인을 즐길 수 있습니다. 테이스팅 와인만 마셔도 되고, 커피도 파니 술을 잘 못 마시는 ‘술찌’, ‘알쓰’ 들도 가능합니다.
탭샵바는 와인 애호가로 유명한 래퍼 한해의 단골집이기도 합니다.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 소속사 대표 라이머, MC그리와 함께 나온 그 와인바가 ‘탭샵바’라고 하네요. 나 대표는 협찬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이후 전현무 등 전참시 멤버들이 탭샵바에서 회식도 했다고 하는데요.
참고로, 한해가 좋아하는 탭샵바 안주는 순대튀김이라고 합니다. 그는 “순대튀김하고 샴페인을 먹으면 맛있다”고 하는데요. 순대 튀김 가격은 7900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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