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서정보]‘나의 아저씨’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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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영면에 든 배우 이선균 씨는 영화 '기생충'으로 연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지만 그의 인생작으로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가수 아이유와 함께 호흡을 맞춘 이 작품에서 그는 세상을 향해 가시를 세운 상처투성이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참된 어른'의 역할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평소 드라마와 거리가 먼 중년 남성 중에도 이 작품을 보고 오랜만에 눈물샘이 터졌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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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국민 아저씨’가 마약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에 크게 놀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에 더 크게 놀랐다. 그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 공터의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죽기 전날 변호인을 통해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요구하며 억울해했던 그의 죽음에 동료 연예인들과 팬들은 아연실색했다. 부인 앞으로 ‘어쩔 수 없다’ ‘이 길밖에 없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는 보도도 나왔다. 마약 의혹이 제기되기 전인 10월 초 미국 한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기는 내 일기, 앞으로 또 다른 일기를 쓰고 싶다”고 한 것이 대중을 향한 마지막 인사가 됐다.
▷고인은 수사 과정에서 3차례나 포토라인에 섰다. 흉악범도 포토라인에 한 번 설까 말까 한데 유명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모두 공개리에 소환됐다. 특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검사에서도 마약 음성으로 나온 뒤 이달 23일 세 번째 소환 때는 고인 측이 비공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를 협박한 A 씨의 진술밖에 없는 상황에서 경찰은 그를 거듭 포토라인에 세웠다.
▷미리 약속된 시각에 맞춰 포토라인에 세우는 것은 경찰 수사공보 규칙에서도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법무부 훈령에도 사건 관계인이 원하지 않을 경우 언론 등과 접촉하게 해선 안 된다고 돼 있다. 특히 결정적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경우엔 더욱 그렇다. 최근 마약 무혐의를 받은 지드래곤 역시 포토라인에 설 수밖에 없었다. 마약 혐의로 기소된 유아인도 두 번째 소환부터는 비공개를 요구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의 아저씨’의 명대사 중에는 이선균이 연기한 박동훈이 곤욕을 치르는 상황에서 “아무도 모르면 돼. 그럼 아무 일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이 있다. 절절한 자기 위안으로 어떻게든 힘든 상황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공감을 산 대사였다. 하지만 현실 속의 그는 포토라인에 서고, A 씨와의 녹취록까지 공개되면서 ‘모두가 아는 일’의 주인공이 됐다. 심리학자들은 그렇게 누적된 수치심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라고 한다. 포털의 악성 댓글로 유명 배우들이 자살한 뒤 댓글이 금지된 것처럼 연예인을 무작정 포토라인에 세우는 관행도 이번에 바로잡아야 한다.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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