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으로 無간판 면했지만 `부실 여당` 탈출은?[한기호의 정치박박]

한기호 2023. 12. 2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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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비대위원장 직행, 황금알 거위 배 갈랐을수도
'투명간판' 金 떠나고 韓 등판에 '반짝'했지만
尹 순망치한 부른 '수직 당정' 잔재 강해져
김건희 특검법 대응 용산주도, 자리 비킨 韓
정당다움도 허물어…"5000만 언어" 韓 재량 관건
지난 12월21일 한동훈(가운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장관 이임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한동훈 장관은 당일 국민의힘 지도부로부터 비상대책위원장 공식 추천을 받았다.<연합뉴스 사진>
12월29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 본청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민경우 비대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진>
2009년부터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온라인에서 회자된 폐건물 속 '우리식당 정상영업합니다' 현수막 사진.<인터넷 백과사전 '나무위키' 등재 사진 갈무리>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버린 건 아닐까'. 한동훈 전 법무장관이 이임 즉시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직에 오른 과정을 보며 든 생각이다. 총선출마·선대위원장 등 개인플레이조차 포기했다. 출구도 없다. 비(非)정치인 신분으로 더불어민주당 강경파 정치인들 자충수를 유발하던, '한동훈표 황금알'을 더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우리 식당 정상영업합니다'. 2009년쯤 한 네티즌이 처참한 몰골로 철거 중인 식당 건물에 이런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다고 공유한 뒤, '밈'으로 자리잡은 골계스러운 사진도 떠오른다. '기대주 한동훈' 등판으로 '투명 간판' 상태를 면한 여당 지지율이 반짝 반등했지만, 비대위 인사를 보니 여러가지 의구심을 갇게 돼서다.

총선까지 한동훈호(號) 앞에 놓인 길이 컨벤션 효과란 오래된 문법에 따른 오르막일지, 내리막일지는 알수 없다. 뜯어볼수록 반전미(美)가 없다. 일단 '개딸'을 흉볼 자격도 의심스러운 '금배지 집단행동'과 권부 최상층의 개입으로 당원 100%투표 조차 형해화해 '바지 대표'를 만든과거로부터의 직접적인 반성이 없다.

전임 김기현 지도부 재임 기간은 여권 핵심이 '순망치한'을 자초한 시기였다. 집권당 정규 지도부는 존재했지만, 입술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진검승부로 선출직의 생명인 민주적 정당성을 쟁취한 대표를 만들지 않은 탓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대표직만 취하면 된다는 태도로 지도부를 꾸렸으니 당은 '무(無)간판 노점'같은 상태였다.

여론의 시선은 내내 용산으로 향했다. 당의 온갖 정무적 결정에 언론은 잘잘못을 평가하기 보다는 '용심(龍心)을 거스른 건 없는지'부터 주목했다. 사실상 윤석열 검찰과 '반(反)조국·반공수처 연대투쟁'을 한 전직 원내대표와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대선 단일화 파트너 모두 대표 경선과정서 볼썽사납게 내쳐진 탓이다. 입술 없이 이빨(용산)로 외풍이 직격한 건 당연한 수순이다.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는 일곱 달 만에 당정이 받은 첫 패배 성적표였다. 대통령의 사면·복권으로 만든 후보 재공천, 수도권맹 수준 선거캠페인이 만든 공동의 졸작이다. 민주당엔 일찍 정권심판 선거를 뛸 계기를 줬다. 여당 선출직은 혁신론에 '매윤(賣尹) 완장'으로 두달을 버티다,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시기조차 놓쳤다.

그동안 '수직적 당정관계' 비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반윤(反尹) 역선택'으로 몸값을 키우는 소수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지난 13일 김기현 전 대표가 SNS로 직 사퇴를 알린 배경에 윤 대통령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 직후 반성하고 후퇴해야할 주류는 되레 '한동훈 추대론' 바람을 잡는 등 비대위 논의를 주도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14일 중진연석회의, 15일 비상의원총회, 18일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 20일 상임고문단 오찬까지 당의 '숙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지도부 일각이 이를 "안 해도 되는" 절차로 깎아내리거나, 비정치인 유망주의 '당대표 직행'을 걱정한 비주류를 비윤(非尹)과 싸잡아 "싸가지없다"는 등 김을 뺐다.

법무부가 21일 오후 장관 이임식을 당일 오전에야 알린 것도 조급한 느낌을 줬다. 국민의힘이 비대위원장직 추천을 발표한 건 그날 오후였다. 그 이틀 전(19일) 장관이 '정치 경험 부족' 지적에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다"고 비대위원장직에 의지를 보인 뒤의 일이라지만, 시차가 지나치게 짧았다.

어쨌든 보수 유력 잠룡의 당대표 등판에 여론의 반응은 일찍 감지됐다. 25일 공표된 리얼미터 12월3주차 주간집계(지난 18~22일·전국 성인 2508명·전화 ARS·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윤 대통령 국정 긍정평가를 일간으로 보면 20일 33.0%(부정 63.3%)에서 22일까지 39.7%(부정 58.0%)로 연이틀 급반등했다.

그러나 '신상 한동훈'엔 부담이 적지않았다. 여당이 비대위원장 선출안을 전국위 의결(26일)하기 전날, 용산과 권한대행 지도부가 비공개 고위당정으로 '김건희 특검법 무조건 반대'를 기정사실화했다. 일견 특검법의 '시기'와 일부 '독소조항'만을 문제삼은 듯했던 '장관 한동훈'을 '패싱'한 것이든, 압박을 한 것이든 부적절해 보였다.

26일 취임한 한 비대위원장은 '수직적 당정관계' 비판 관련 기자 질문에 즉답하지 않고 "수직적이니 수평적이니 이야기 나올 부분이 아니다"고 흘려보냈다. 여당은 28일 권한대행이 최고위와 의총을 주재하며 김건희 특검법 표결 무조건 반대를 외치고, 대통령실은 가결 즉시 '거부권 행사' 방침 표명까지 했다.

'상임전국위 의결로 비대위 정식 출범은 29일부터'란 기계적인 논리로는 의문이 메워지지 않을, 사실상 '리더십 공백'을 노출했다. 시종일관 책임정치를 등진 탈당자의 '갈빗집 선언', 일부 측근의 '살라미 탈당'과 나란히 이슈가 될 필요가 있었나. 비대위 인선 발표(28일) 이후 잡음도 '한동훈 주도'라고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대표적인 게 민경우 비대위원 내정 직후 불거진 "노인네들이 너무 오래산다는 게 비극", "빨리빨리 돌아가셔야" 발언 논란을 향한 대처다. '신세대 사회진출 지지'란 취지를 살펴도 문제가 있다. 전향 운동권으로서 지난 7월초 여당 의총에서 '광우병 선동' 관련 특강을 한 지 석달 뒤의 발언이니 조심성도 의심스럽다.

민경우 비대위원이 2년여 전 유튜브에서 영화 '봉오동 전투'를 '주사파식 민족주의'로 비판하며 한 '제국 청년', '정예 일꾼' 발언도 29일 보도됐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연달아 "사실관계가 틀린 오보"라며 "법적 조치"를 예고했을 뿐이다. 언론사명과 기사를 특정해 "오보"라면서도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이게 '여의도 사투리' 아닌가.

민 비대위원은 29일까지 노인폄하 부분만 사과 입장문을 되풀이했고, 한 비대위원장은 직접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5000만명 국민이 사용하는 언어를 쓰겠다"던 말대로라면 또 법무장관 시절의 그라면 경질조치를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하던 5000만의 언어나, '결정권자 다운' 모습이 어쩐지 보이지 않는다.

비대위 인선 전반도 균형감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 비대위원장 취임 연설 당시 "대한민국의 불멸의 역사"라던 '넥타이 부대', 즉 586 운동권의 직전 선배세대는 배제됐다. 대부분 당외 탈(脫)운동권·탈진보, 여성, 장애인, 취약계층 지원활동가 출신이 자리했다. '1만시간의 법칙'이 떠오를 만큼 정치를 충분히 체감해본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혁신위같은 구성이다. 공천관리위의 핵심인 사무총장은 속칭 '0.5선급' 의원이 맡았다. 지난 당대표 경선 선거관리위원 시절 행적이 떠오른다. 당 싱크탱크의 장(長)도 당밖 출신 전직 여론조사 전문기자가 맡았다. 지도부 전반이 최종적인 고도의 정무판단을 주도하거나, '수직 당정'에서 벗어날 만한 무게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다.

586 주축 민주당 정권이 5년 만의 교체로 심판받았는데, 총선에 '반586 대선 시즌2'를 연출하는 게 정치인 한동훈을 향한 최우선 수요가 맞는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공당 지도부를 시민단체처럼 꾸린 건 말 그대로 '모험'이다. 간판만 신경쓰다 건물이 무너질 수 있고, 또 신인들이 '진정한 재량권'을 갖지 못하면 '중고' 미만으로 전락할 수 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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