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저널] 1636년 12월, 가장 추웠던 겨울
인조 굴복… 병자호란 ‘치욕의 역사’
청군은 소나무 가지와 잡목을 성 밖에 쌓아 6∼7일 동안 삥 둘러싸 둘레 100여리, 서너 길 높이의 외성(外城)을 만들고 성에 있는 조선군을 압박해 나갔다. 당시의 강추위도 이전보다는 훨씬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1637년 1월 ‘연려실기술’의 기록에는 “늦겨울의 혹독한 찬 기운이 전에 없던 것이었다. 적이 움직이면 바람이 일어나고 적이 정지하면 바람이 그치며 초겨울에 온 눈이 지금까지 녹지 않았는데, 장수와 모든 군사가 항상 추운 곳에 거처하여 얼굴빛이 푸르고 검어서 사람의 형상 같지 않고 살이 터지고 손가락이 빠져 참혹함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고 하여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던 그날의 비참했던 상황을 증언해 주고 있다.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군의 압박이 이어지자, 청과의 화친을 주장하는 주화론(主和論)의 목소리가 커졌다. 주화론의 중심 이조판서 최명길(崔鳴吉)은 척화론의 대표 김상헌(金尙憲)과 남한산성에서 강하게 충돌했다. 2017년에 개봉된 영화 남한산성은 두 사람의 대립을 중심으로,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의 모습을 주제로 다루었다. 최명길은 인조의 동의하에 항복을 청하는 국서를 작성하였고, 삼전도(三田渡: 현재의 송파구 석촌호수 일대)에 지휘 본부를 차린 청나라 진영을 오가며 협상을 성사시켰다. 1637년 1월30일 인조는 47일 만에 남한산성을 내려와 청 태종에게 항복을 청하고, 군신(君臣) 관계를 맺으면서 전쟁을 마무리하였다. 혹독한 추위와 더불어, 오랑캐라고 무시하였던 청나라 황제에게 조선의 왕이 치욕스러운 항복을 한 아픔 때문일까? 1636년 12월 그해 겨울은 역사 속 어느 해보다도 추웠던 겨울로 기억되고 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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