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심사 결과와 상관없는 심사 후기

2023. 12. 2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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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춘문예 심사를 했다.

예심과 본심을 동일한 심사위원들이 진행한 터라, 본심 진출작 중 내가 예심에서 올린 작품도 두 편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각자 당선작으로 점찍은 작품이 일치할 경우 사실 그 심사는 어떤 작품이 더 좋거나 덜 좋은지 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좋은 작품 보는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자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이 각자 점찍은 작품이 엇갈리는데 그것들이 비슷한 지지율을 보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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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춘문예 심사를 했다. 예심과 본심을 동일한 심사위원들이 진행한 터라, 본심 진출작 중 내가 예심에서 올린 작품도 두 편 있었다. 두 편 다 완성도가 높고 독자적인 미학이 있어 내심 당선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본심 뚜껑을 열어보니 놀랍게도 나머지 후보작들 역시 그만큼 뛰어난 작품들이었다. 심사가 쉽지 않으리라 직감했다.

어떤 심사는 시작하자마자 끝난다. 심사위원들이 각자 당선작으로 점찍은 작품이 일치할 경우 사실 그 심사는 어떤 작품이 더 좋거나 덜 좋은지 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좋은 작품 보는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자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어떤 심사는 영 끝나지 않는다. 심사위원들이 각자 점찍은 작품이 엇갈리는데 그것들이 비슷한 지지율을 보일 때이다. 딱 이번 심사가 그러했다.

최종적으로 A 작품과 B 작품이 접전을 벌였다. 심사위원들이 A와 B 진영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맞섰다. 성격상 사람들 앞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일을 어려워하는 나는 주로 듣는 쪽이었는데, A 진영의 주장을 들으면 A가 당선되어야 할 것 같고 B 진영의 주장을 들으면 B가 당선되는 게 맞겠다 싶을 만큼 양쪽 다 논리가 정연하고 관점이 확고했다. 대치 상태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물론 다수결이라는 유서 깊은 의사결정법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고 할까. 심사위원들은 열과 성을 다해 반대 진영을 설득했다. 서로 말을 끊거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때 누군가 물었다. 근데 우리가 왜 얼굴까지 붉히며 싸워야 하지?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 와중에 나는 문득 가슴이 뭉클했다.

냉정하게 말해 어느 작품이 당선된들 심사위원 개인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특정 작품을 당선시키려 애쓰는가. 혹자는 자존심 문제라고, 자신이 미는 작품이 낙선하면 자신의 문학적 안목이나 권위가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날 심사위원들에게서 다른 더 큰 이유를 보았다. 응모자가 혼신을 바쳐 썼을 작품들을 어느 하나 허투루 여기지 않겠다는, 행여나 심사에 실수가 있어 억울하게 낙선되는 작품이 있으면 안 되리라는, 낙선자도 독자도 누구나 인정할 작품을 뽑겠다는, 그래서 마치 자신의 안위라도 걸린 문제처럼 심사에 끝까지 철저히 완벽을 기하려는 마음 말이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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