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데 없는 것이 예술이 되는 매력[책과 삶]
노상관찰학 입문
아카세가와 겐페이·후지모리 데루노
미나미 신보 지음 | 서하나 옮김
안그라픽스 | 472쪽 | 2만2000원
건물 외벽에 붙은 이상한 문. 밖에서 들어가자니 너무 높은 곳에 달려 있어 열고 갈 수 없고, 안에서 열고 나오면 바닥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곳에 달린 문. 그런 것을 볼 때, 관찰자이자 현대미술가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아카세가와 겐페이는 생각했다. “어떤 규칙도 없는 물체들이 형용할 수 없는 박력을 뿜어내며 예술가의 의도가 담긴 창작물을 초월”한다고.
그는 거리의 매력에 빠졌다. 더 이상 쓸모없지만 건축물이나 길바닥에 부착돼 그 환경의 일부로 보존된 구조물이나 흔적이 그 자체로 예술을 초월한다며 ‘초예술’이라 부르고, 여기에 높은 연봉을 받았으나 벤치만 지켰던 메이저리그 출신 야구선수 게리 토머슨의 이름을 합해 개념예술 ‘초예술 토머슨’을 탄생시켰다. 그렇게 쓸데없는 것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하나둘 모이며 ‘토머스니언’이 되었고, 기어코 ‘노상관찰학회’가 발족되기에 이르렀다.
건축학자이자 관찰자인 후지모리 데루노부가 “마르셀 뒤샹은 근대미술이 허구라고 알았다. 변기에 사인하면 그것이 예술이 된다고 다 까발려 보여주었다”고 말하자, 아카세가와는 “서명이 들어가는 작품이나 한 작가의 독창성보다는 사상 그 자체를 만드는 것에 흥미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책엔 관찰 기록을 담은 귀여운 일러스트와 사진 등도 여럿 담겼다. ‘도시 걷기용 소도구’도 소개한다. 비스킷과 바닥에 골이 있는 신발 등이다. 출출할 때 먹거나 편하게 걷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비스킷은 길을 걷다가 만나는 개나 고양이와 교류하기 위한 것이다. 골이 있는 신발은 숙소에 돌아가 골에 낀 작은 돌들을 채집하기 위해서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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