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호기심의 캐비닛
전시의 기원을 말할 때면 등장하는 ‘호기심의 캐비닛’은 16~17세기에 유럽의 권력자들 사이에 대유행이었다. 귀중한 물건을 수집하는 것은 권력자들 사이에서 오랜 전통이었지만, 다른 대륙으로 탐험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수집 욕망은 다른 차원으로 뻗어나간다. 유럽인들은 낯선 땅에서 발견한 이국적인 물건들에 매료되었고, 희귀하고, 기이하고 독특한 것들에 열광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무한한 호기심과 정복 욕망이 캐비닛 열풍을 견인했다.
캐비닛은 수집품들을 소중하게 모아 두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캐비닛의 서랍과 문을 하나씩 열어보며 방문객들은 희귀한 물건들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고, 이러한 컬렉션이 가능한 소장자에게 경탄 어린 찬사를 보낸다.
이들의 수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희귀함뿐, 수집품 사이 어떤 일관성을 찾기 어려웠지만, 캐비닛은 개인 수집가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드러냈다. 지금처럼 지식이 세분화되지 않았던 당시 상류층의 교육에서 다양한 관심사를 통해 세상에 대한 지식을 발전시키는 것은 필수였다. 이들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편으로 ‘세상’의 파편을 수집하고, 자신의 캐비닛을 만들었다. 과학·철학·신학적 관점을 아우르는 수집품들은 호기심·상상력과 만나 소장자가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개인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캐비닛이 담아야 할 것은 뒤틀린 욕망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비밀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건강한 애정과 열정, 지적 호기심일 것이다. 각자의 캐비닛을 열었을 때, 한 개인이 쌓아온 경이로운 세계를 향해 경탄할 수 있기를. 우리의 캐비닛이 온전히 풍요로울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소환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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