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남한에 큰 파장” 지시? 국정원 의아한 보도자료에 전문가 “설득력 없어”

김예진 2023. 12. 2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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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근들에게 “내년 초 남한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국가정보원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주요 첩보를 공개하면서도 내용과 형식상 비논리성탓에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다.

국정원은 28일 ‘북한의 연초 군사도발 가능성 대비’라는 제목의 2쪽 분량 보도자료를 내고 “내년도 북한이 우리 주요 정치 일정 등을 앞두고 연초 군사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8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자료에서 국정원은 “북한은 20대 총선(2016년)을 앞두고 △핵실험(1.6) △무인기 침범(1.13) △대포동 미사일 발사(2.7) △GPS 교란(3.31)을 연이어 자행했고, 21대 총선(2020년) 직전에는 3월 한달 간 대남 전술 무기인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4회 연쇄 발사한 바 있다”고 했다. 이어 “이에 북한이 우리 총선과 미국 대선이 있는 2024년 정세 유동기를 맞아 불시에 예기치 못한 군사·사이버 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또 “북한은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주도한 김영철을 지난 6월 통일전선부 고문으로,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등을 지휘한 리영길과 박정천을 8월 각각 총참모장과 군정지도부장으로 기용, ‘도발 주역 3인방’을 군·공작기관에 복귀시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지난 8월 남한 점령을 목표로 한 ‘전군(全軍) 지휘훈련’을 처음 실시하면서 “사회·정치적 혼란 유발을 위해 우리 민간시설 타격도 주저치 않겠다”고 엄포한 데 이어, 우리의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정지(11.22)를 빌미로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단행(11.23)하고 ‘대한민국 소멸’까지 언급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김정은과 김여정의 대남 위협 수위도 날로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27일 당 전원회의에서 ‘내년 투쟁방향에 대한 강령적인 결론’을 밝히며 군·군수·핵무기·민방위 부문에서 전쟁준비 완성에 박차를 가할 것을 지시했다”고 했다.

이어 “김정은은 지난 18일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후 한·미(韓美)를 향해 “진화되고 위협적인 방식으로 강력 대응할 것”임을 밝혔고, 측근들에게 “내년 초 남한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고 했다. “김여정도 지난 21일 한·미(韓美) 비난 담화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도발 가능성을 시사했다”며 “국정원은 과거 북한의 행태과 최근 북한의 대남 위협 발언 수위 등을 고려할 때 연초 북한의 도발이 예상되는 만큼 유관 부처와 함께 조기경보 및 대비태세 확립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이 “남한”이라고 말했다?

보도자료에서 언론과 전문가들의 눈길을 붙든 것은 “김정은이 측근에게 “남한에 큰 파장”을 일으킬 방안”을 지시했다는 인용 대목이다. 북한에선 “남한”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28일 배포한 보도자료 캡처
남북은 서로를 지칭하는 어휘가 다르다. 남한은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을 ‘북한’으로, 북한은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을 ‘남조선’으로 부른다. 대한민국 헌법 영토조항에서 군사분계선 이북지역도 대한민국 영토로 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합법 정부’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북한도 남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명에 맞춰 ‘남조선’이라고 부른다.

이 같은 입장차에 따라 남북이 접촉하는 자리에서는 주로 ‘남측’, ‘북측’을 쓰기도 한다. 2018년 정상회담 때 남북 정상이 이례적으로 서로의 국명을 불렀던 것은 상대 정부를 존중하는 태도임을 드러내려 한 의도였고, 최근 남북관계가 악화하자 북한이 우리 정부를 “대한민국 괴뢰”라고 한 것은 대남 거리두기 및 비아냥 의미로 우리 국명을 활용한 것이었다. 남북 역사에서 서로에 대한 지칭은 그만큼 의미가 큰 정치적 선택으로, 예민한 문제였던 셈이다. 김정은이 측근에게 “남한에 큰 파장을 준비하라”고 했다는 말은, 윤석열 대통령이 측근에게 “북조선에 1원도 주지마라”고 말한다는 것 만큼 이상한 언어 사용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9일 “김정은 위원장이 당, 군 측근들에게 ‘남조선’, ‘대한민국괴뢰’ 등의 표현도 아닌 ‘남한’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중요 첩보를 녹여놓기?

특히 해당 대목은 그간 북한이 공개했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로, 말그대로 새로운 ‘뉴스(NEWS)’다. 그러나 보도자료 후반에 ‘스쳐가듯’ 기재됐다.

국정원이 판단 근거로 제시한 것은 △2016·2020년 전례 △김영철·리영길·박정천 복귀 △지난 8월 남한 민간 시설도 타격 운운 △9·19군사합의 파기 선언 △최근 김정은·김여정의 대남위협 수위 고조다. 이 가운데 김정은·김여정의 대남위협 수위 고조 사례로 △27일 당 전원회의 이틀째에 “전쟁준비 박차” 지시 △12·18 ICBM발사 후 “진화되고 위협적인 방식으로 강력 대응” 경고 및 김정은이 측근에게 “내년 초 남한에 큰 파장 일으킬 준비” 지시 △12·21 김여정 담화를 들었다. 새로 공개되는 김정은의 지시라는 정보의 중요성에 비해 ‘측근 지시’ 정보가 거의 맨 뒤, 9개 문단 중 7번째 문단에 등장한다. 또 “지시한 바 있다”는 서술어로 쓰여, 마치 기존에 알려진 정보인 것으로 헷갈리게 표현되기도 했다. 이는 중요한 정보, 새로운 팩트(fact)를 가장 앞세워 강조하는 일반적 상식과도 차이가 있어 의아한 부분이다. 

국정원은 ‘측근 지시’ 정보는 국정원이 자체 입수한 첩보라는 입장이나, 신뢰성을 뒷받침할 직·간접적 출처나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내년 초 남한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는 국가정보원 관련 보도가 28일부터 쏟아지자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29일 “북한이 노골적으로 총선 개입 의지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다른 분석도 반박 이어져

‘측근 지시’ 정보의 진위 논란 외에,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한 국정원의 분석에 대해서도 반론이 나온다.

양무진 교수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북한의 도발은 한·미훈련, 미 전략자산 전개, NCG회의 관련 맞대응 성격”이라며 “국정원이 제시한 2016· 2020년 사례도 우리 선거와의 연관성 낮다”고 했다.

국정원이 든 사례가 총선 전에만 있던 사례도 아니다. 국정원은 2016년 1∼3월 4차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 사례를 근거로 들었으나 국방부가 펴내는 국방백서에 따르면 2016년 4·13총선 후에도 4월23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4월28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5월27일 서해 NLL침범, 5월31일 IRBM, 6월22일 IRBM, 6월23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7월9일 SLBM발사 등을 이어갔다. 2020년도에는 3월 9일과 29일 단거리발사체 발사, 4월14일 순항미사일 발사가 있었으나 4·15총선 후인 5월 3일에도 GP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총선이 없던 지난해 국방백서의 ‘북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현황’을 보면 1월 5일 준중거리미사일, 1월11일 준중거리미사일, 1월14일 단거리미사일, 1월17일 단거리미사일, 1월27 단거리미사일 등 1월에만 6번 미사일 시험발사가 있어, 총선이 있던 2020년의 1분기보다 횟수가 많다.

4년에 한번 총선을 치르는 4월은 매년 한·미연합훈련이 있고 이에 북한이 반발하며 통상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곤 한다. 

국정원 측은 ‘측근 지시’ 첩보 관련 김정은이 “남한”이라고 한 것이 맞는지, 새롭고 중요한 첩보를 왜 기존에 밝혀져 있는 내용에 뭉뚱그리는 형태로 기재해 공개했는지 문의에, ‘정보사항’에 대해 자세한 언급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해왔다.

양 교수는 “북한은 자신들의 도발이 보수 정부에게 간접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발을 하는 것은 체제훼손과 존엄모독을 좌시할 수 없는 체제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선거에서 국정원이 북풍 유인의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언행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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