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 속에서 절망하는 우리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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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받은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말이다.
인간은 시간을 연속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시간의 지속 속에서 기억이 축적되며 삶 역시 이어진다는 뜻이다.
망각이 절망을 강화하는 이유는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기억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작품 내내 무의미하게 시간을 죽이는 것, 나무에 목을 매 목숨을 끊으려 하는 것, 50년간 함께 한 서로에게 회의감을 느끼는 것은 이들의 시간이 기억으로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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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극 시작 연 20세기 고전
기다림과 망각의 반복 통해
실존적 절망 빠진 현대인 그려
신구·박근형·박정자·김학철 출연
도합 227년 경력으로 익살 연기
노벨문학상을 받은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말이다. 인간은 시간을 연속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시간의 지속 속에서 기억이 축적되며 삶 역시 이어진다는 뜻이다.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1969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기억을 소재 삼아 현대인이 처한 부조리를 드러낸다. 두 사람의 방랑자가 미지의 인물을 기다리며 망각에 시달리는 이야기는 삶의 연속성을 잃은 인간들의 실존적 비극을 보여준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20세기 연극사에 부조리극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만든 고전이다. 1953년 프랑스 파리의 소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오른 뒤 50여개 나라에서 공연됐다. 한국에서는 1969년 산울림 소극장 초연 뒤 1500여회 공연되며 약 22만명의 관객을 맞았다. 신구(에스트라공), 박근형(블라디미르), 박정자(럭키), 김학철(포조) 등 대배우들이 출연하는 이번 공연은 오는 2월 18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진행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앙상한 나무 앞에서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인지, 그가 언제 오고, 이들이 왜 그를 기다리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그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뿐이다. “그만 가자” “가면 안 되지”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
두 사람의 기다림을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은 망각이다. 이들은 종일 고도를 기다리고도 이튿날 자신들이 전날 고도를 기다렸다는 것을 잊는다. 전날 만났던 포조와 럭키를 기억하지 못하고, 어제 벗어둔 구두가 자신의 것인 줄 모른다. 그날도 고도는 결국 오지 않고, 다음날에도 그들은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 하루가 다음 하루로 이어지지 못하고 동일한 기다림이 쳇바퀴 돌 듯 반복된다.
절망적 상황이지만 극의 분위기는 침울하지 않다.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웃음을 주는 장치들이 많다. 합계 연기 경력이 227년에 달하는 대배우들은 당근 조각을 가지고 궁상을 떨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고, 바지가 벗겨지는 등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망각이 절망을 강화하는 이유는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기억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을 축적하지 못하는 인간은 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두 사람이 작품 내내 무의미하게 시간을 죽이는 것, 나무에 목을 매 목숨을 끊으려 하는 것, 50년간 함께 한 서로에게 회의감을 느끼는 것은 이들의 시간이 기억으로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극의 백미는 고도의 소식을 전하러 온 소년에게 블라디미르가 뭔가를 깨달은 듯 캐묻는 장면이다. 소년은 전날에도 전했던 말을 블라디미르에게 똑같이 전하지만 자신이 어제도 그 자리에 왔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고도에게) 가서...나를 만났다고 말해라...틀림없이 넌 나를 만난 거다. 내일이 되면 또 나를 만난 일이 없다는 소리는 안하겠지?”라는 블라디미르의 절규는 관객에게 그의 숙명을 깨닫게 하며 비극성을 강화한다.
고도는 누구일까. 베케트는 생전에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냐는 연출자의 질문에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불가해한 것은 애초에 알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고도를 기다리며’가 고도의 정체를 끝내 밝히지 않는 것은 그것이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관객들에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고도를 기다린다는 것, 삶의 지속성을 회복하지 못하는 한 죽기 전까지 그를 계속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막이 끝나도 무대가 암전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두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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