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은 성평등法의 역사

서지혜 기자 2023. 12. 2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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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나인-셰리 보셔트 지음, 위즈덤 하우스 펴냄
채용에서 교육·스포츠 활동까지
여자라는 이유로 기회 박탈당해
1972년 제정 美 첫 성차별금지법
'타이틀 나인'의 탄생과 여정 다뤄
2007년 차별금지법 발의했지만
16년째 국회표류 韓에 시사점도
[서울경제]

2020년 국내 여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포함된 젊은 여자 가수들이 축구단을 창단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남성 연예인들이 축구 동호회를 꾸려 취미로 축구를 즐긴다는 뉴스는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여성 연예인이 골프가 아닌 구기 종목 동호회를 만들었다는 소식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동호회는 흐지부지된 채 자취를 감췄다. 이들의 축구 동호회 활동을 ‘남성 연예인들과 어울리려는 의도’라고 비하하는 온라인 악플이 쏟아지자 멤버들은 해명에 진땀을 뺐다.

젊은 여성의 축구 동호회 활동이 남성의 축구 동호회와 다르게 평가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여성의 축구 동호회 활동 자체가 친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학창 시절을 통틀어 여성들이 취미로 축구, 농구를 하는 일이 드문 데다 영유아기에도 여아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일이 거의 없는 교육 환경의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분위기는 어떨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여자 주인공은 남자 아이들과 함께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한다. 많은 미국 드라마에서 여학생들이 축구, 야구, 하키 등 격렬한 운동을 취미로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여성들이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를 즐기고, 대표 선수로 활약한다. 올림픽 등 국제 대회에서 미국 여성 스포츠 선수들이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분위기의 배경에는 ‘타이틀 나인’이라는 법이 있다.

‘타이틀 나인’은 1972년 제정된 미국 교육에서 성차별을 금지한 최초의 법이다. 당초 미국에는 인종, 민족, 종교, 성별 등에 대한 차별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1964 민권법’이 있었는데, 이 법에는 교육에 관한 내용이 빠져 있었다. 이 사실을 인지한 사람은 유대계 미국인 버니스 레스닉 샌들러다. 그는 41세에 교수직 채용에 지원했지만 ‘드센 여자’라는 이해 불가능한 이유로 면접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버니스 샌들러는 자신이 겪은 상황을 ‘차별’이라고 판단, 참고 문헌을 뒤져 법적 근거를 찾기 시작한다.

타이틀 나인은 처음 교육 기관의 입학, 채용 절차에서 차별을 제재한다. 이후 여학생과 여자 운동선수, 팀과 지도자들의 스포츠 활동 참여의 기회를 열기로 한다. 그 결과 압도적으로 많은 여학생이 스포츠에 참여했고, 이는 오늘날 미국 여자 스포츠가 여러 종목에서 세계 최강의 수준에 이르게 된 계기가 된다.

타이틀 나인은 성적 지향 때문에 괴롭힘이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성소수자 보호에 관한 내용도 담고 있다. 최근 수년간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참여에 대해 논쟁이 격렬한데 미국 조 바이든 정부는 성전환자나 성별을 확정할 수 없는 학생을 차별에서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한 바 있다.

저널리스트인 셰리 보셔트가 쓴 ‘타이틀 나인’은 1972년 제정 이래 미국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 ‘타이틀 나인’의 50년 여정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타이틀 나인이 그 자체로 절대적 선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법은 교육에만 한정된 성차별 금지법이며,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타이틀 나인’은 한국 사회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16년 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성소수자 관련 내용 등 법에 대한 반발이 법 통과를 방해하는 요인이다. 어떤 사회든 ‘없는 법’을 ‘있는 법’으로 만드는 데는 첨예한 갈등이 따른다. 그 과정을 통해 진일보한다.

‘타이틀 나인’은 여성이 투표권을 얻은 이래 세계를 변화시킨 가장 중요한 법이기도 하다. 이 법은 순차적으로 주변 여러 선진국에 유사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왔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도 힘을 내야 할 시기다. ‘타이틀 나인’은 차별 금지를 위한 법 제도 마련의 지난한 과정을 미리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2만9000원.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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