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의 아벨 콰르텟, 피아노 오중주의 최대 걸작 선사

강애란 2023. 12. 2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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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피아니스트 말로페예프와 협연…과장하는 법 없는 담백한 악단
아벨 콰르텟 '결성 10주년'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결성 10주년을 맞은 현악 4중주단 '아벨 콰르텟'이 지난 9월 11일 서울 연합뉴스 사옥에서 열린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9.12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하나의 사중주단을 키워내는 것은 교향악단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다. 변화무쌍한 악상을 좇으면서도 작곡가의 내면을 그려내는 정신성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네 사람이 한 몸을 이루는 일체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구성원 개개인의 개성을 높은 수준에서 드러내는 것은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 클래식계는 뛰어난 기교를 가진 스타 연주자들을 꽤 배출해 왔지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실내악 앙상블은 최근에 들어서야 키워내기 시작했다. 홀로 돋보이는 음악보다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의 묘미가 우리 관객들에게도 서서히 알려졌기 때문이다. 아벨 콰르텟은 그 대표적인 악단이다.

2015년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 우승팀인 아벨 콰르텟은 얼마 전 하이든의 현악 사중주로 창단 10년 만에 첫 음반을 냈다. 노부스 콰르텟이나 에스메 콰르텟에 비해 데뷔 음반이 늦었지만, 그들과는 구분되는 아벨 콰르텟만의 개성을 충분히 보여준 큰 발걸음이었다. 특히 하이든을 탁월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가치다. 교향악, 실내악, 성악을 막론하고 아직 우리 공연 무대에서 특히 빈 고전주의 작품들의 유연한 기품과 엄격한 형식미를 동시에 표현해낼 줄 아는 연주자 및 단체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드라마틱한 강렬함보다는 선명한 성부와 균형감, 아기자기하고 디테일한 악상의 조형력을 강점으로 하는 아벨 콰르텟은 지난 28일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열린 공연에서도 그 진가를 충분히 드러냈다. 아벨 콰르텟은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말로페예프를 협연자로 슈만과 브람스의 피아노 오중주를 선보였다. 피아노 오중주 편성은 고전 시대 이후 실내악의 가장 중요한 두 장르가 된 피아노 음악과 현악 사중주를 하나로 결합한 장르로, 실내악 장르 가운데서는 가장 심포니적인 음향과 다채로운 색채를 자랑한다.

아벨 콰르텟 연주회 [토마토클래식TV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부에서는 브람스의 피아노 오중주를 연주했다. 박수현이 제1바이올린을 맡은 아벨 콰르텟은 나직한 목소리로 출발했다. 1악장은 스윙감이 있는 굴곡진 선율과 격렬한 단발 리듬이 인상적이다.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고조되었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하는 악상에서 말로페예프는 최대한 피아노 음색을 투명하게 연주했고, 아벨 콰르텟은 절제미를 발휘하며 구조적 미를 드러냈다. 다만 피아노와 현악 솔로가 맞세워질 때에도 솔로 악기가 여전히 뒤로 물러나 있는 느낌이어서 악상의 입체성이 반감될 때가 있었다.

아벨 콰르텟은 해석의 방향을 소리 가닥들의 선명한 움직임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둔 듯했고, 그에 따라 브람스의 실내악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음향적 양감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피아노 오중주가 낼 수 있는 음향적 범위를 완전히 활용하지 않은 듯한, 다소 덜 극적인 해석이었으나 그 덕분에 브람스의 사색적인 면면이 드러났다.

그러한 점은 특히 2악장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곡에 걸쳐 아벨 콰르텟은 현악 음악의 미묘한 아름다움을 잘 들려주었는데 특히 강세를 두지 않는 긴 음가, 가운데 음이 비어 있는 화성 등에서 세세한 뉘앙스를 실었고, 장조의 뻗어 나가는 선율에서는 확장되는 느낌을, 단조의 끊어지는 모티프에서는 수축되는 느낌을 가미하여 시종 만족스러운 음향을 들려줬다.

2부에서는 피아노 오중주 장르를 창시했다고 말할 수 있는 명작 슈만의 피아노 오중주를 윤은솔이 제1바이올린을 맡아 무대에 올렸다. 악상의 선이 굵은 브람스에서보다 더 탁월한 연주가 펼쳐졌다. 모티브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조형하는 아벨 콰르텟의 능력이 빛을 발했다. 1부의 브람스가 다소 빠른 템포와 선명한 가벼움으로 인해 종종 멘델스존을 연상시키는 색다른 접근이었다면 2부에서는 정교함과 서정성이 한데 어우러져 그야말로 탁월한 슈만의 실내악을 들려줬다. 1악장은 거의 협주곡을 연상시킬 만큼 뛰어난 응집력이 인상적이었고, 2악장에서는 1부에서 다소 부각되지 못했던 현악 솔로 부분, 특히 비올라의 박하문의 강렬한 표현력으로 듣는 재미를 선사했다.

결성 10주년 맞은 아벨 콰르텟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결성 10주년을 맞은 현악 4중주단 '아벨 콰르텟'이 지난 9월 11일 서울 연합뉴스 사옥에서 열린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9.12 scape@yna.co.kr

무엇보다 악구의 원형을 엄격하게 지키면서도 유연한 흐름을 잃어버리지 않아 슈만의 노래 악장을 더없이 훌륭하게 재현해 냈다. 3악장 스케르초에서는 음계 위를 올라가는 시퀀스를 겹쳐 놓은 활달한 악장인데, 여기서도 아벨 콰르텟은 절제미와 균형감으로 듣는 귀를 만족시켰다. 슈만이 바흐에게 영감을 받아 펼쳐 놓은 4악장의 장대한 푸가 또한 전체 공연의 클라이맥스로 손색이 없었다. 말로페예프의 피아노 또한 탄탄하고 흔들림이 없으며 시종일관 깨끗한 서정성을 잃지 않았는데 슈만에서는 성격적인 강렬함까지 겸비하여 특히 3악장과 4악장에서는 오히려 브람스보다 더 압도적인 앙상블을 들려줬다.

아벨 콰르텟은 귀 기울여 들어야 진가를 알 수 있는 악단이다. 잠깐의 음향 효과나 거창한 제스처로 과장하는 법이 없는 담백한 악단이다. 오늘 연주에서도 그 점이 잘 드러났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건강하고 본질적인 음악을 하는 아벨 콰르텟에게 보다 많은 주목과 격려가 필요하다.

lied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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