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로 인생의 전환점 만들어”… 농구동호인의 ‘이단아’ 박정길
전라북도 전주 농구동호인팀 ‘불혹’에는 불혹(40)을 훨씬 넘어 칠순의 ‘고희’를 앞둔 ‘최고령자 선수’가 있다. 1955년생으로 68세인 박정길씨이다.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보이는 그는 농구를 즐기며 건강하게 산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처럼 농구에 푹 빠져 산지도 벌써 30년째를 넘는다. 전주를 비롯해 전라북도에서 열리는 대회는 물론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한다. 올해에만도 인도네시아 국제대회 등 3차례나 해외 원정경기까지 다녀왔다.
그의 소속팀인 ‘불혹’은 말 그대로 구성원 대부분이 40세 전후로 이뤄져 있다. 2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가 많다. 하지만 팀 명칭 나이를 훨씬 넘은 그는 이들 못지않은 농구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다. 리바운드싸움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체력적으로 우월한 후배들과 경기를 펼친다.
그는 아들뻘 되는 동료들 사이에선 ‘메리야스 아저씨’로 불린다. 민소매 속옷을 걸치고 코트에서 굵은 땀을 흘리며 뛰는 모습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팀 맏형으로서 체력과 정신력에서 결코 뒤지지 않으려 한다. “비록 나이가 먹었지만 후배들에게 건강하게 농구를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젊은 선수들은 열심히 하는 그를 보며 더욱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평소 그를 ‘아버지’라고 스스럼없이 부르는 팀 동료 김봉진(43)씨는 “격의없이 우리들과 함께 어울리시는 것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며 “아름답게 나이가 드시는 어르신은 우리팀의 자랑이다”고 말한다.
그는 비선수 출신으로 전국 지역 농구동호인팀에서도 초고령자에 속한다. 선수출신까지 포함하면 이마관(71)씨에 이어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농구선수 출신도 아닌데 7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된 지금까지 농구에 빠져 사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뛸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참 좋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십수년간 매주 빠짐없이 체육관에 나가 동호인들과 농구를 즐겼다. 1m75로 군살 하나 없이 조각품처럼 미끈하게 뻗은 몸매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농구 덕분이라고 한다. 농구를 하기 위해 달리기 등으로 기초체력을 가다듬고, 열심히 경기를 하다보니 건강한 몸을 갖게됐다는 것이다. “간혹 부상을 당하기도 하지만 조금 쉬면 금방 낳는다. 농구를 통해 건강을 관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구랍 세밑 하얀 잔설이 쌓인 전주 시내 완산구 백제대로, 그가 운영하는 베리타스 학생복점 사무실에서 만나 그의 농구 사랑을 들어봤다.
“체력이 닿는 한 코트를 누비겠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동호인 농구계에서는 ‘이단아’이다. 선수 출신도 그 나이쯤 되면 정상적으로 뛰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젊은 선수들에 결코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앞장서서 농구 경기를 주도하고 있다. 하루 8경기 정도를 뛴 적도 있다고 한다. 이미 코트에서 뛸 나이가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동호인 농구에서 그는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출전하는 대회서 그는 많은 주목을 받는다. 매 경기마다 한, 두 쿼터씩을 소화한다.
나이에서 +1점을 적용하는 룰로 그는 2점슛을 넣으면 1점을 더 받는다. 한 경기 18점을 넣고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받은 적도 있다. 그의 포지션은 포워드이다. 어릴 적 학생시절 육상 단거리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아직도 빠른 발을 이용해 속공에 나서며 드라이브슛에 능하다. 또 상대 공을 기습적으로 뺏는 ‘스틸’에도 강하다.
“평소 스피드 훈련을 많이 한다. 젊은 선수들을 쫓아가려면 열심히 뛰고 또 뛰어야 한다. 다행히 몸이 잘 받쳐줘 경기를 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골밑에서 드라이브슛이 들어갈 때면 큰 희열을 느낀다. 상대 공을 재빠르게 차단해 역습을 할 때도 짜릿한 기분을 맛본다”
2023년은 농구를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농구를 하기 전에는 해외 여행 경험을 갖지 않았던 그는 2023년 3번이나 동남아시아 대회에서 원정 경기를 가졌다. 인도네시아, 대만, 중국 청도에서 해외 경기를 가졌던 것이다. 동남아 시니어 농구대회에서 MVP 수상을 한 바 있는 윤진구 KBL 패밀리 부회장의 권유를 받고 올해부터 해외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해외 대회 현장에 자신의 농구경기를 하는 것을 보러 가족까지 응원에 나섰다. ‘아직도 체력이 건재하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보여준 것이 큰 보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농구를 할 수 있게 해준 아내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원래 50세와 60세가 됐을 때, 아내가 이제 농구를 그쯤했으면 그만해도 됐다”며 적극적으로 농구를 하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칠 줄 모르는 그의 농구 사랑을 보곤 반대자 입장에서 바뀌어 이제는 적극적으로 농구를 하는 것을 도와준다고 한다. 전주 지역으로 원정 온 다른 지역 농구 동우회 팀 선수들에게 식사나 간식거리를 제공하며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는 “2년 후 70세가 돼더라도 충분히 뛸 자신이 있다. 앞으로 체력이 허락하는 한 젊은 선수들과 함께 코트를 누빌 생각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재단사에서 농구 마니아로
그의 원래 직업은 재단사이다. 원단을 사다가 옷을 짓고 파는 일을 업으로 한다. 학생복 제작 및 판매 일을 한 지도 40여년 이상이 됐다. 그가 농구에 빠진 것은 1990년대 중반쯤이다. 서울 동대문으로 원단을 사러가다 잠깐 시간이 나면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지는 여자농구를 구경하려 갔다. 태평양화학, 동방생명, 한국화장품 등 실업여자농구에 푹 빠졌던 것이다. “박찬숙, 성정아 등 여자 선수들의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농구 재미에 매료됐다. 빠르고 거친 남자농구보다 여자 농구를 먼저 보게 되면서 농구가 좋아졌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설치된 농구 골대에서 우연히 덩크슛을 성공시키면서 농구공을 본격적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불혹’ 농구팀에 정식으로 가입한 것은 2014년 여름이었다.
“농구를 하다보니 내성적인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뀌게됐다. 동생뻘 되는 어린 후배들과 서로 땀을 흘리며 경기를 한 뒤 같이 식사를 하며 아주 가까운 관계가 됐다. 농구에 집중하면서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풀며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학생복 제작일을 30여년 하면서 건강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농구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매주말 전주 신흥중학교 체육관 등에서 빠짐없이 농구 경기를 하며 후배들과 어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선수출신들에 비해 농구 기본기가 잘 갖춰지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 드리볼, 패스, 슛자세 등은 어릴 때 기본기를 닦아야 하지만 뒤늦게 농구를 배워 안정적인 자세를 갖춰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기를 고수하지 않고 겉보다는 내실있는 농구 실력을 보여주려 힘쓴다.
“한국은행 센터 출신인 윤진구 후배와 같이 기본기가 뛰어난 선수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는 재미도 있다. 아무래도 선수 출신들이 중심이 돼 경기를 이끌어 나갈 때 좋은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원 생활 즐기는 ‘낭만파’
농구에 열중하는 그를 보고 손주들까지 농구를 즐긴다. 그는 “며느리가 건강을 위해 농구를 하는 나를 보고 손주들까지 농구공을 잡게 했다. 손주들은 내가 운동을 할 때 따라와 같이 공을 갖고 노는 시간이 많다”고 말한다. 주변에서도 농구를 하는 그를 부러워 한다고 한다.
대지 100평인 4층짜리 건물에서 2층은 자신의 사업장으로 쓰고 있으며 1층과 3층은 임대를 내놓고 있다. 4층에서 부부 내외가 사는데 그는 농구가 없을 때는 전주에서 남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완주군 백여리에 마련한 농막주택에서 호젓한 시간을 자주 보낸다. 시골정취가 물씬 풍기는 산자락에 마련된 농막주택에 농구 동호인들을 초청, 식사를 갖는 것을 즐긴다.
“나이가 들수록 그 어느 것보다 건강이 중요하다. 농구가 있어서 인생이 너무 즐겁다. 동호인들과 어울려 농구를 하는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며 그는 농구를 통해 건강한 노년을 만들어가고 있다.
[전주=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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