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신청하니 부랴부랴 'CCC'…신평사 또 '뒷북'[현장에서]
이벤트 발생하자 뒤늦게 'CCC'로 강등
고질적인 뒷북 강등…"구조적으로 해결 쉽지 않아"
[이데일리 마켓in 안혜신 기자] “일주일 전에만 해도 ‘A-’등급줘 놓고 워크아웃 신청하니까 뒤늦게 ‘CCC’가 말이 됩니까”
태영건설(009410) 신용등급을 놓고 신용평가사에 대한 시장 비난이 거세다. 워크아웃 직전까지도 A등급을 유지하다가 태영건설이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하자 부랴부랴 등급을 강등하면서 ‘뒷북 강등’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신용평가사들은 태영건설에 대해서 ‘A-’ 등급을 부여하고 있었다. 가장 최근 움직임이 지난주 한국신용평가와 NICE신용평가에서 ‘하향검토’ 등급감시대상(와치리스트)에 올린 것이 전부다. NICE신평의 경우 지난 27일 하향검토 대상에 올리고 하루 뒤에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자 불과 하루 만에 등급을 다시 ‘CCC’로 허둥지둥 내렸다.
한국기업평가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다른 신평사와는 다르게 하향검토도 아닌 등급 전망만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것이 전부였다. 부정적 전망 변경도 워크아웃 신청 정확히 일주일 전인 지난 21일의 일이다.
신평사들의 신용등급 뒷북 강등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당장 작년 레고랜드 사태만해도 그렇다. 한국신용평가는 당시 레고랜드 건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인 아이원제일차에 기업어음 최고 신용등급인 ‘A1’ 등급을 부여했다. 하지만 대출 약정에 따른 만기상환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C등급으로 낮췄고, 결국 최종 부도처리가 되면서 가장 낮은 등급인 D등급으로 뒤늦게 조정하면서 시장의 불만을 샀다.
신평사들의 뒷북 신용등급과 관련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지난 2012년 발생한 동양 사태다. 동양그룹은 당시 자금난으로 인한 파산을 피하기 위해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대량발행해서 일명 돌려막기로 연명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신평사들은 동양그룹 계열사들의 법정관리 신청 전까지 등급을 조정하지 않았다. 이후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나서야 뒤늦게 채무불이행 상태로 뒷북 강등하면서 비난을 받았다. 당시 금융당국은 신평사에 대한 고강도 검사를 진행하고,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직원에 대한 중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물론 신평사 입장에서도 억울한 면이 있다. 태영건설이 예상보다 빠르게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이를 신평사 입장에서도 예측하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한신평은 이날 급히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의 영향과 건설사 신용등급 검토 계획’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태영건설이)계열 자산 매각 등 지원과 PF 사업장 구조조정 추진 등을 감안하면 일정 수준 유동성 대응력은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조기에 워크아웃을 신청한 데는 워크아웃이 재도입되는 제도적 변화 하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과 관련한 정부 정책 기조가 적절한 구조조정으로 전환된 점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 신평사 관계자 역시 “하반기 들어서 태영 관계자를 만나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오고 있었다”면서 “이런 과정을 거쳤음에도 3사 모두가 등급 변동이 없었던 것은 워크아웃 신청이라는 시나리오를 쉽게 예상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신평사가 태영건설에 대한 뒷북 신용등급 논란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워 보인다. 신평사는 시장에서 선제적으로 채권 발행주체의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역할을 한다.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신평사에서 보유하는 채권 발행자의 신용등급을 보고 위험도를 평가한 뒤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신평사는 이번에도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문제는 신평사들의 이러한 뒷북 등급 강등이 구조적으로 개선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신평사 입장에서는 비용을 지불하고 신용등급 평가를 의뢰하는 발행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한 시장 관계자는 “신평사가 선제적으로 등급을 조정하고 뒤이어 신용관련 사건이 발생한 경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면서 “발행사의 눈치를 봐야하니 굳이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으려는 것인데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뒷북 등급 강등은 계속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안혜신 (ahnhy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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