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재정운용, 국회·정부·시장 3중 실패 이겨내야 [쓴소리 곧은 소리]
‘복지 예산’이 항상 국민 행복 보장하지 않아…규제 철폐에 더해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시사저널=김원식 명예교수(건국대, Georgia State University))
2024년도 예산안이 여야의 극심한 대치 속에 더불어민주당의 단독처리 카드에 밀려 2023년 12월21일 지각 통과되었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은 656.9조원에서 656.6조원으로 국회 심의 과정에서 3000억원 삭감되었다. 지난해 본예산보다 2.8% 증가한 것으로 정부예산안과 총액에서 큰 차이가 없다. 이는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의 예산이고 2023년 물가상승률(예상)이 3.5% 수준이기에 사실상 축소 예산인 것은 맞다. 그러나 국가 재정의 전후 과정으로 보면 심각한 절차상 문제와 2024년 이후 막대한 재정 지출이 예약되는 구조적 문제가 노출되어 있다.
이번 국회의 예산 처리 절차는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방식이다. 야당이 법안을 만들어 정부에 강요하다시피 하고,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수시로 재의하고, 정부가 법안을 제안하면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무산시킨다. 특히 내년 예산안과 관련해서는 총선 전략인지 어떤지 야당이 일방적으로 정부의 예산안을 삭감하고, 자신들의 공약 예산을 끼워넣었다. 지금까지 어떤 예산 심의 과정에서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국회 실패(congress failure)'가 예견된다.
현재 정부 재정의 가장 큰 문제는 적자로 인한 국가채무 증가다. 지난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가채무는 2018년 680조5000억원에서 2022년 1067조4000억원으로 56.9% 폭증했다. 건국 이후 지금까지의 정부가 아끼고 아낀 재정을 5년 단임의 한 정부가 모두 들어먹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해괴한 경제 논리와 경직적인 친노동 일변도 정책으로 경제 시스템을 퇴행시키는 정부 실패(government failure)를 낳았다. 그리고 이에 따른 경제적 부작용은 민주당의 절대적인 국회 지배로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18년 680조원이었던 국가채무, 2022년 1067조원으로 폭증
1200조원에 가까운 국가채무를 국회가 정부안보다 4000억원 줄였다고 안도할 문제는 아니다. 2025년 이후에도 재정적자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포퓰리즘 정책과 관행들이 총선용으로 은닉되어 국가부채가 곧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예산과 별개로 비용이 11조원에 달할 '달빛철도건설특별법'을 예비타당성조사도 없이 입법 추진 중이다. 정부의 우려에도 여야가 합의해 본회의에 부의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149개 사업에서 120조1000억원을 예타 면제사업으로 진행했다. 이 중 상당수는 국회의원의 출신 지역 챙기기로 사실상 시도 의원이 해야 할 일을 국회의원이 대행하고 있다. 게다가 총선에 즈음해 쪽지예산 관행이 이어지면서 예산 심의의 투명성을 의심받게 하고 있다.
민주당 총선 1호 공약인 간병비 급여화 예산이 포함되었다. 기획재정부는 복지부가 책정한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시범사업 예산 16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가 공식 석상에서 주장한 대로 요양병원 간병 지원을 위한 사업모델 연구와 시범사업 예산을 85억원으로 증액해 단독으로 의결했다. 총선으로 여야 구도가 어떻게 바뀔지 몰라도 간병비 급여화가 실현되면 2025년부터 건강보험에서 간병비 지출은 큰 폭으로 늘어나고 보험료 인상 요인이 된다. 건강보험료가 인상되면 예산외(off-budegt) 지출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예산외 지출은 정규 예산에 포함되지 않는 예산으로 사회보험이나 공공기관 지출 등을 포함한다. 일반 국민은 소득세보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료를 훨씬 더 많이 내고 있다. 이러한 예산이 결국은 재정적자의 주범이 된다.
윤석열 정부는 국가부채 증가를 우려해 절약형 예산으로 전방위적으로 예산 증액을 억제하는 예산안을 제출했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는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법 개정을 국회에 요구해 왔다. 규제 위주의 시장 정책을 해체하지 않으면 심각한 성장잠재력을 상실하게 된다. 국회의 법 개정을 통해 시장 실패(market failure)를 억제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는 지지 기반인 기득권층을 보호하기 위해 사실상 정부 개혁을 사사건건 가로막고 있다.
정책에도 타이밍이 있다. 국회가 법으로 제정해 결정한 복지 부문의 의무지출과 초고속 고령화로 재정적자가 급속히 쌓이는 시점에 노동·연금·교육 개혁은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타이밍이다. 국회 실패를 억제할 수 있는 예산 절차의 혁신을 위해 이제는 적어도 다음의 사항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첫째, 복지제도에 대해 스트레스 테스트를 해야 한다. 복지제도가 빈곤층을 감소시키는지,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지, 국민의 복지 만족도를 개선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생산성을 개선시킬 수 있는지 검증해야 한다.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어떤 제도든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에게 모든 복지제도가 국민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
복지의 빈곤층 감소 효과 면밀하게 따져야
둘째, 예산제도의 변화가 시급하다. 매년 정규 예산과 함께 다년도 예산을 구체적으로 작성하고, 예산외 지출을 편성하도록 하고 국회가 의결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부채를 통제하는 지표로 사용해야 한다.
셋째, 예산에 관한 단일 국회의 일방적 독주를 막고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예산 재심이 가능하게 하는 양원제를 도입해야 한다. 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구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대신 광역자치단체 중심의 상원을 두는 양원제를 도입해 예산과 법안에 대한 독주를 막고, 투명한 예산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넷째, 정부 지출을 통제하는 재정준칙, 세금을 정부에 따라 임의로 부과하지 못하게 하는 세입준칙, 국가채무를 상환하게 의무화하는 상환준칙을 입법화해야 한다. 이는 정부와 국회가 상호 견제를 통해 재정 안정을 이루면서 국민을 위한 효율적 예산이 가능하게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진 각국이 인정하는 3050(5000만 명 이상 인구의 국가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의 7대 경제 강국에 속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IMF(국제통화기금)의 통계에 따르면 올해 국가별 1인당 소득 순위는 32위에 불과하다. 소득 없이 복지가 개선될 수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국민의 소득 수준을 그냥 높여줄 수도 없다. 국민이 더 열심히 피땀 흘리며 노력해야 가능하다. 따라서 경제 전반적으로 기득권을 철폐하는 규제 개혁으로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규제의 덫으로 인한 시장 실패와 보편적 복지로 인한 정부 실패에 덧붙여 절대적 다수당의 독재로 인한 국회 실패라는 초대형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시간이 없다. 오는 4월의 총선은 '국회 실패'라는 폭탄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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