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채 발행은 부담”... 강제 상환·고금리 감내하고 사모채 찍는 기업들

이인아 기자 2023. 12. 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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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미국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에도 국내 자금조달 시장 불안정
영화관·해운·편의점 업계서 사모채 조달 활발

최근 사모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공모채를 발행하기 어렵거나 투자 수요를 확보하기 부담스러운 기업들이 사모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시중 유동성이 말라버린 건 아니지만, 내년 경기 불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기업, 투자자들이 심리가 위축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래픽=정서희

29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국내 기업들이 사모 시장에서 발행한 채권은 총 3341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발행된 사모채가 총 1579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1년 만에 2배 넘게 늘어난 셈이다. 회사채 발행이 늘어났다는 건 시중에 유동성이 돌고 있다는 의미다.

유동성은 있지만, 기업들이 돈을 빌리는 난도는 높아졌다. 과거 사모채는 신용등급을 받기 어렵거나 영세한 기업이 주로 발행했는데, 최근엔 신용등급이 우량한 대기업들도 사모시장을 찾는 추세다. 공모채를 발행하기엔 불확실성이 커 투자자와 사전 협의를 거친 후 사모채를 발행하는 것이다.

강제 상환 옵션이 붙는 경우도 늘었다. 보통 기업이 자금 조달이 어려울 때 투자자에게 내거는 카드다. 만약 기업의 신용등급이 떨어지거나 약속했던 전제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만기 전에 돈을 모두 갚겠다는 강제 조항이다.

이달 사모채를 가장 많이 발행한 곳은 롯데컬처웍스였다. 30년 만기 영구채로 총 800억원을 조달했다. 영구채 금리는 연 8.10%로, 2년 후 롯데컬처웍스가 조기 상환권(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으며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금리가 두 자릿수로 늘어나는 구조다. 추가로 100억원 규모의 사모채를 발행했는데, 여기에도 강제 상환 옵션도 붙었다.

영화관 사업을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는 코로나19 당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위기를 겪었다. 이후 적자가 누적되면서 신용등급이 떨어졌고, 지난해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로부터 기업어음 신용등급 A-를 받기도 했다.

같은 사업군으로 분류되는 CJ CGV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달 초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 후 500억원 규모의 사모채를 연이어 조달했다. CJ CGV가 발행한 사모채의 표면이율 연 7.25%로 회사채(연 7.2%)보다 0.05%포인트 높다. 다만 공모채 조달이 가능했고, 사모채에 강제 상환 옵션이 걸리진 않아 롯데컬처웍스보단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올해 업황이 고꾸라진 해운사들도 사모채 시장을 찾았다. 코로나19 당시 해운 수요가 몰리면서 지난해까지 호황을 누렸지만, 올해 불황은 비껴가지 못한 탓이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초 5000수준에서 움직였지만, 올해는 1000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달 22일 SK해운은 130억원 규모의 사모채를 연 6%대 금리에 발행했다. 이달 초에는 강제 상환 옵션을 붙여 사모채 160억원을 발행하기도 했다. 이달 발행한 금액만 총 290억원이다. 올해로 기간을 늘리면 사모채는 총 1109억원으로 늘어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SK해운은 금리가 낮은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주로 활용했는데, 올해는 조달 여건이 확연히 나빠졌다.

현대엘앤지해운은 2주 간격으로 돈을 빌리고 있다. 지난 11월 15일 150억원의 사모채를 발행한 후 같은 달 29일 49억원, 이달 21일 100억원을 추가로 조달했다. 현대엘앤지해운이 사모채를 발행한 건 지난 2021년 5월 이후 2년 6개월 만이다.

점포 간 출혈경쟁이 심해진 편의점 업계도 사모채 시장을 자주 찾고 있다. 롯데그룹 계열의 편의점 체인회사인 코리아세븐은 이달 들어 세 차례나 사모채를 발행했다. 발행 금액은 총 520억원으로, 표면이율 연 7%대 초반에서 찍었다.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이마트24도 석 달 연속 사모채를 발행했다. 지난 10월 150억원을 조달한 데 이어 11월 200억원, 12월 100억원을 추가로 빌렸다. 이달 발행한 사모채에는 3개월 내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는 강제 상환 옵션이 붙었다. 이에 이마트가 이마트24 대상으로 1000억원을 출자하기도 했다.

내년 경기 침체 우려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까지 더해지면서 당분간 자금조달 시장에 온기가 돌긴 어려울 전망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 금리가 내려가더라도 0%대로 내려가진 않으며, 이에 따라 수요 위축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사모로 자금조달은 가능할 정도의 유동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시장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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