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따로, 병 따로” 아무도 몰랐다…쓰레기 분리수거 갈수록 어려워 [지구, 뭐래?]

2023. 12. 2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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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푸 분리배출표시. 주소현 기자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플라스틱 PET, 라벨: PP, 펌프캡: 종량제 배출, 재활용 어려움

바닥을 비운 이 샴푸의 뒷면에 나온 분리배출표시다. 병과 뚜껑, 라벨이 모두 다른 재질이라고 나와 있다. 각각 따로 버려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무엇을 어디에 버려야 할 지 이 표시만 보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기존에는 ‘페트’ 등 단순하게 나타냈던 분리배출표시가 새해부터 복잡해진다. 병뿐 아니라 뚜껑이나 라벨의 재질과 분리 여부에 따라 분리배출표시가 모두 달라졌다.

분리배출 방법을 따로 찾아보지 않아도 되니 편리할 수 있을 거라는 취지와 달리 이 표시를 제대로 해석하는 것부터 난관이다.

분리배출표시 가이드북 [환경부]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에서 발간한 ‘분리배출표시 가이드북’에 따르면 ‘페트’의 분리배출표시는 네 가지 분류로 나뉜다. ①분리 불가능 ②무색 페트병 ③유색 페트병 ④그외 플라스틱병이다.

이에 따라 올바른 분리배출을 하려면 ①과 ④는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병이 라벨이나 뚜껑과 분리되지 않고, 여러 재질이 섞인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되지 않아서다.

②와 ③의 경우 펌프가 달린 뚜껑은 일반쓰레기로 버리되 ②의 병은 투명 페트병으로, ③의 병은 플라스틱으로 버리면 된다.

개정된 분리배출표시에서는 병의 색에 따라 ‘무색페트’와 ‘플라스틱’으로 문구를 구분했다. 삼각형 마크의 색도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나눴다. 뚜껑은 일반쓰레기로 버릴 수 있도록 하단에 ‘종량제 배출’이라는 문구도 추가됐다.

가이드북을 보니, 위의 샴푸는 ③에 해당한다. 병은 페트 재질이나 색깔이 있으니 플라스틱류로 버리고, 펌프 뚜껑은 플라스틱과 금속으로 된 용수철 등이 섞여있으니 종량제, 즉 일반쓰레기로 버리라는 의미다. 폴리프로필렌(PP)이라는 라벨은 비닐류로 버리면 된다.

구강청결제 분리배출표시. 주소현 기자

새해부터는 이같이 분리배출표시 개정안이 모든 재활용의무대상 포장재에 적용된다. 분리배출표시가 개정이 시작된 건 2021년이었으나 제품 및 포장재의 재고 소진, 새로운 도안의 인쇄 및 각인 장비 교체 비용 등을 고려해 지난해와 올해에 새로 출시된 제품만 적용 대상이었다.

바뀐 분리배출표시는 구체적인 재질을 명시하는 점이 특징이다. 기존에는 병 등 주요 구성 부분의 재질만 표시했다면 개정된 도안에서는 뚜껑이나 라벨 등의 재질까지 일괄 표기하도록 바뀌었다.

기존에는 종이팩이라고 표시해도 됐지만 이제는 종이팩과 멸균팩으로 구분해야 한다. 종이팩은 폴리에틸렌과 종이로만 구성됐다면 멸균팩에는 알루미늄도 들어간다.

탄산음료 분리배출표시. 주소현 기자

이처럼 분리배출법이 복잡해진 건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다. 재질이 같은 쓰레기끼리 모을수록 재활용률이 높아지니 소비자가 버리는 단계에서 최대한 재질 별로 나눠 달라는 의미다.

문제는 까다로운 분리배출 방법을 익히고 행동에 옮기는 책임이 모두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포장재 업계에서는 항목을 세세하게 나눌수록 분리배출하기 어려워지면서 소비자들에게 재활용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포장재업체 관계자 A씨는 “재활용이 되는지, 어디로 버리면 되는지만 표기하면 될 텐데 분리배출표시가 복잡하게 바뀌었다”며 “점점 더 소비자들이 펌프부터 라벨, 병까지 전부 분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리배출표시 가이드북 [환경부]

재질을 일일이 표기하면서 오히려 분리배출표시를 한눈에 보기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HDPE’, ‘바이오HDPE’ 등 길고 어려운 재질 명칭을 삼각형 마크 하단에 넣어야 하니 글자 크기는 작아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분리배출표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표시의 크기는 문구를 제외하고 가로와 세로 8㎜ 이상이면 된다. 제품 및 포장재의 정면이나 측면 바코드의 상하좌우에 위치하도록 돼 있다.

식품업체 관계자 B씨는 “기존의 분리배출표시에서도 글자 크기가 작았는데 개정안에서는 더 작아져 읽기 힘들 정도”라며 “소비자들이 분리배출표시를 읽기 어렵더라도 어쩔 수 없이 개정안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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