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준석 “‘다수가 잘 사는 법’ 고민 없으면 지도자 자격無…천·아·인 합류”
천·아·인 순차적 탈당 후 신당 합류키로
“한동훈, 끝없이 빌런과 敵 상정하는 직업병”
‘상계동 사람들’을 입에 올릴 때 말고는 거침이 없었다.
총선 100일 전 각종 구도와 셈법, 정치적 시나리오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1호 정책’을 묻자마자 5개 아젠다를 막힘없이 제시했다. 저출산과 감군(減軍), 국민연금개혁, 이공계 육성, 제도권 정치에선 의제로 오른 적이 없던 이혼 및 양육비 지급 제도도 있었다. 저출산 대책의 범위를 ‘태어날 아이’에서 ‘태어났지만 오롯이 보호받기 어려운 아이’로 넓혀야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접근이다. 그러다 고향 상계동의 4호선 출근길, 작은 집으로 옮기고 자녀 전세집 해주는 ‘보편의 삶’을 말할 땐 특유의 웃음기도 사라졌다.
10년 넘게 머문 당을 떠난 바로 다음 날인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에서 이준석 전 대표를 만났다. 한동훈 전 법무장관이 국민의힘 총선을 이끌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한 지 이틀 만인 날이다. 그는 한 위원장에 대해 “보수 진영 정치인이라도 결국 ‘최대 다수가 잘 사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나라를 이끌 자격이 없다”고 했다. 탈당회견 때 언급했던 고(故)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의 이름도 다시 거론하며 “신당은 상계동 정치 선배 노회찬의 가치까지 함께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당장 내달부터 호남을 시작으로 5개 시도당 창당위원회를 만든다고 말했다. 이후엔 가칭 ‘개혁신당’ 중앙당 창당대회도 연다. 신당에는 국민의힘 소장파인 ‘천·아·인’이 합류하기로 했다.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과 이기인 경기도의원은 29일, 비례대표인 허은아 의원은 내주 중 탈당 입장을 밝힌다고 한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내달 중순에는 창당 작업을 끝낼 수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ㅡ스물여덟에 정당에 들어와 당대표까지 지냈던 ‘보수 정치인’이 결국 당을 나가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뭔가.
“‘박근혜 비대위’의 비대위원으로 있으면서, 선거를 이기려면 약 100일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100일을 가치 있게 보내면 국민들이 알아준다는 걸 깨달았다. 보수 정당이 100일의 시간을 개혁과 분위기 전환에 쓴다면 선거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봤었다. 하지만 세 달 가까이 지켜봤던 당은 아무 변화가 없었다. 결국 아주 강력한 ‘정권심판론’ 아래에서 선거를 치르게 될 거라고 판단했고, 마지노선에 이르러서 선택을 한 것이다.
탄핵을 겪으면서 보수 정당은 중도화 노선을 포기했다. 종교와 완전히 밀착돼 더 좁은 스펙트럼에 머물게 됐다. 조직과 돈을 사실상 교회 집단에 의존하니 여기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랬던 당이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부터 ‘김종인-이준석’ 조합으로 생명을 연장했는데 또 극우로 되돌아갔다. 집을 지으면 부수고, 지으면 부수는 ‘비버 집짓기’와 똑같다. 원희룡 장관같이 개혁적·합리적이라고 인정받던 분마저 장관 그만두자마자 전광훈 목사같은 사람이 있는 곳을 가장 먼저 가는 것 보라.”
ㅡ탈당 회견 때 ‘창당 후 주어지는 역할에 따라’ 출마 지역구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서울 노원부터 대구, 제주까지 다양한 곳이 거론됐는데.
“제주는 사실 가능성이 없는 지역인데, 제가 그 정도까지 열려 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말했다. 제 목표가 그저 ‘내년 총선에서 당선되는 것’이었으면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거다. 하지만 저는 당선보다 새로운 체계를 만들고 싶었다. 신당에서 인지도가 있는 제 역할은 단순히 개인의 몫이 아니다. 신당 창당을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우선 논의하기 위해 지역구를 정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거다.”
ㅡ총선 전 국민의힘과 재결합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역구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건 ‘국민의힘과 협상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 길은 아예 지워버렸다. 국민의힘 모 현역 의원도 어제 탈당·신당 창당 기자회견에 대해서는 ‘잘 되기를 바란다’고 해놓고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는 물어뜯지 않나. 협상과 대화는 상대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할 수 있다.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협상은 의미가 없다.”
ㅡ측근인 ‘천아인’(천하람·허은아·이기인)도 신당에 합류하나.
“천하람 위원장과 이기인 의원이 곧 탈당 회견을 한다. 그 다음에 허은아 의원이 의원직을 던지고 탈당을 선언 할 것이다. 각자 순차적으로 할 예정이다.”
ㅡ새로 태어나는 정당의 1호 공약이 궁금하다.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유효기간에 다다른 사안에 대해 빠른 판단을 내리는 거다. 예를 들면, 저출산으로 군 병력이 더 가파르게 감소하니 120㎏ 고도비만인 사람도 입대시켜 휴전선에서 근무 시키자고 한다. 민통선 뚫리는 일이 계속 생기는데 단순히 경계선에 병력 배치해 놓는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휴전선에 다 세워놔도 이렇게 넘어오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것 아닌가. 적의 대규모 공습이나 반격 작전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병력 감소는 더 빨라졌는데 감군 논의는 문재인 정부때 했다고 꺼내지도 않고 있다. 큰 틀을 과감히 깨야 한다는 말이다.”
ㅡ저출산 대책과 동시에 그 여파에 대응하는 정책도 다양한 방면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한부모가정의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다. 아이를 낳도록 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데, 이미 태어난 아이들 중 이혼 등 사유로 가정에서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 채 성장하는 경우도 많다.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교육봉사단체에서 활동할 때 편모·편부 가정 아이들 상당수는 부모 갈등 때문에 양육비 지원이 제대로 안 된 상황에 놓여있었다. 실제로는 편부모인데 법적 이혼을 안 해서 수급자가 될 수 없는 아이들도 많았다.
과거 가부장적 분위기가 지배하던 시절에 마련된 이혼 제도는 유책주의(혼인관계 파탄에 대한 책임이 없는 쪽에만 이혼청구권을 인정)가 강하다. 하지만 양육비 만큼은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 교육과 기초적인 생활에 필요한 비용의 일정 부분은 국가가 선지급하자는 거다. 이후에 소득이 발생하면 국세청에 상환하는 형태로 가면 된다. 이미 학자금대출은 ‘취업 후 상환제’가 적용되는데, 아이 양육비도 이런 식으로 전환하는 걸 고려해보면 좋겠다. 이런 것들이 신당의 굉장히 중요한 정책 공약으로 만들어질 거다.”
ㅡ국회가 최근에 출산 및 결혼 장려 목적으로 증여세를 3억까지 면제하는 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거는 제가 꼭 짚고 싶다. 갈비집에서 탈당회견할 때 ‘상계동 정서’에 대해 말씀 드렸었다. 여러 복잡한 것도 있지만 제가 고향 상계동을 좋아하는 건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현실을 희생해서 미래의 희망을 키워가는 곳이라고 생각해서다. 거리도 멀고 다닥다닥 붙어 가는 지하철 출근길, 구축아파트 사는 좀 불편한 일상 같은 것을 감내하면서, 다음 세대는 좀 더 낫겠지 기대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도시다.
그런 분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인데, 젊은 때 일 열심히 해서 50대 후반, 60대에 상계동에 집 한 채 들고 있는 분들 되게 많다. 보통 자식 결혼시킬 때 본인들은 더 작은 집으로 이사 가고, 남은 돈으로 자녀 전세집에 보태주신다. 그런 사람들한테 3억 증여세 면제가 무슨 의미일까. 일반 시민이나 제가 사는 지역민들에겐 약간 호사스러운 이야기다.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겠다는 취지는 긍정적으로 본다. 그런데 당장 얼마나 정책적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여태껏 결혼과 출산을 안 한 이유가 그것 때문은 아니지 않나.”
ㅡ오늘(지난 28일) 본회의에 올리는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현 정부·여당의 전략은 어떻게 보나. 의석수만 봐도 민주당 예고대로 통과될 수밖에 없다.
“성역 없는 수사를 언급한 게 무색할 정도로 ‘성역을 만드는 역사적인 표결’ 아닌가 싶다. 다만 야권에서도 법 통과 직후의 전략이 안 보인다. 국민이 인정할 만한 특별검사 후보자를 빨리 세운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래야 윤 대통령도 거부권을 행사하는 데 부담을 느낀다. 야당이 그런 고민은 부족한 것 같다. 누가 봐도 공명정대한 사람을 특검으로 추천했는데 대통령이 거부한다는 건 여당에 악재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을 추천하면 야당에 악재가 될 거다.”
ㅡ전날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취임 회견은 어떻게 평가하나.
“여의도 문법을 안 쓰겠다고 했는데 지극히 여의도 문법에 맞는, 아주 정치인같은 연설문이었다. 검사는 범죄자, 악인이 없으면 놀아야 하는 직업이다. 특히 특수부면 끊임없이 악인을 찾아내고 뭔가를 기획하며 살았던 사람인데, 지금도 계속 적을 상정하고 빌런을 만들어내고 있구나 생각했다. 혹 직업병이 있는 건가.(웃음)
한 위원장이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이 되려면 국민이 지금 누구를 지목해서 불편해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간단하다. ‘한동훈-윤석열’ 조합이 지지를 받았던 건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 필요성에 대한 국민의 공감을 얻어서였다. ‘이재명의 민주당’에 대한 여론이 나쁘다고 판단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치우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한 위원장의 선택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재명 잡기에만 치우치는 건 다소 이해가 안 간다.
국민의힘이 전국 단위 선거에서 지난 12년 간 못 이기다가 성공했던 전략이 ‘김종인-이준석’이 추진한 ‘세대 포위론’이다. 그런데 한 위원장은 그걸 부정했다. 외연 확장과 중도층 공략 정책을 버리면서 어떤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한 위원장은 전날 국회에서 ‘이준석 전 대표의 세대포위론을 어떻게 보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건 맞지만, 세대 포위론이나 세대를 나이 기준으로 갈라치기 하는 건 누군가에게는 정략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몰라도 세상에는 해로울 수 있다”고 답했다. 이 전 대표는 2030세대와 노년층이 합심하면 더불어민주당을 앞설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왔다.
ㅡ한 위원장이 내년 1월 첫 일정으로 대구·경북 신년 인사회를 간다던데.
“윤석열 대통령처럼 트랩(Trap·함정)에 빠진 거다. 일정을 잡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본인이 모시는 사람에 대해 오로지 좋은 반응만 나오는 곳에 보낸다는 의미라서 그렇다. 한 위원장이 지금 가장 환대받고 환영 받을 곳이 어디인지 그것만 생각한 것 같다.
나는 대선 때 전라도를, 윤석열 당시 후보는 경상도를 돌았다. 그때 윤 후보가 ‘이준석이 나를 싫어해서 일정을 따로 다니느냐’고 물었다더라. (웃음) 온탕에 있다가 냉탕 가면 살을 에는 추위가 온다. 반대로 냉탕부터 가고 온탕 가면 조금씩 따뜻해진다. 한 위원장이 부디 잘 선택하기를 바란다.”
ㅡ이준석·한동훈 둘다 보수 진영에서 ‘젊고 신선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어느 지점에서 확실히 차별화를 할 수 있나.
“아무리 보수 진영에서 정치하는 사람이라도 결국 최대 다수가 잘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이 없다면 나라를 이끌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김종인 위원장이 거론했던 ‘경제민주화’를 두고 다들 각각 의미를 부여하지만, 나는 ‘경제 성장의 과실이 민주적으로 분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회 변화에 대해 어떻게 적응하고 대처할까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고민을 미리 했느냐가 나와 한 위원장의 다른 지점이라고 본다.
단적인 예로, 기자들이 현안을 질문하는데 한 위원장은 ‘민주당이 물어보라고 했느냐’ 등 다소 불편한 기색을 표했다. ‘이민청같이 내가 답하고 싶은 정책은 왜 안 물어보나’ 이런 기색이었다. 그저 똑똑한 사람들보다 미리 고민해보는 사람들이 정치권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남들이 고민 안 할 때 대한민국의 여러 문제들을 미리 고민하는 진지함과 대처 능력은 정말 중요하다.”
ㅡ그런 식으로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분들은 ‘당적과 무관하게’ 만나겠다고 했다. 혹 유승민 전 대표와 왕래도 있었나.
“유승민 전 대표는 제가 ‘오세요’ 한다고 오실 분도 아니고 ‘가세요’ 한다고 가실 분이 아니다. 다만 저는 신당이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면 유 전 대표와 대화를 꼭 한 번 하고자 한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금태섭 전 의원, 양향자 의원 등) 그분들과도 계속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정치는 각 집단의 최대공약수를 잘 찾는 과정 아닌가. 다만 ‘음모론자’는 무조건 배척할 생각이다. 예를 들면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한다든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경우는 함께할 수 없다. 정책적 이견이라면 어느 정도 조율할 수 있다.”
ㅡ김기현 대표 사퇴 당시 두 사람의 만남이 크게 주목 받았다. 당시에 어땠나. 이후에 또 김 전 대표와 연락은 했나.
“그때 만난 이후로 대화를 한 적은 없다. 당시에 허심탄회하게 군더더기 없이 1시간 정도 대화를 했다. 다만 그때 상황 예측이나 해석에 대해서는 저와 김기현 대표 생각이 좀 달랐다. 김 대표는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그래도 좀 있었다. 오히려 (당에 남으라고) 저를 설득하셨다. 다만 이제 이런 상황이 됐으니 김 대표도 본인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셔야 할 거다. 분명 한 번은 김 대표도 결단을 해야 하는 시간이 올 거다.”
ㅡ(인터뷰 도중) 국민의힘이 비대위원을 발표했다. 지명직 중 현역은 김예지 의원뿐이고, 다른 7명은 ‘여의도 정치’ 경험이 없다.
“비대위 회의에서조차 현역 의원들의 입김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한동훈 비대위에서 임명한 공천관리위원장의 공천 과정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한 번쯤은 재의 요구를 하는데, 그것도 아예 듣지 않겠다는 거다. 재의 요구조차 안 듣겠다는 건 선거를 이기는 정상적인 진용은 아니다. 그저 공천에서 칼을 제대로 휘두르겠다는 거다. 속된 말로 ‘다 죽이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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