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몰려오는데 ‘한나땡’ 외치는 野[이현종의 시론]

2023. 12. 2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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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보선 패배 후 與는 혁신 몸부림
野 ‘이대로 쭉’ 외치며 변화 無
올해 마지막까지 여야는 대립
정치 교체 요구 목소리 높아져
惡貨가 良貨를 구축하는 모양
천수답 정치로는 민심 못 얻어

연말연시가 되면 기업들은 대대적 인사와 더불어 신년 계획을 짜는 데 여념이 없다. 유능한 CEO라도 한 해 시장에서 실패하면 여지없이 책임을 져야 한다. 수익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매년 말이면 두둑한 보너스를 받아 부러움을 샀던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직원들은 올해 반도체 불황에 연말 보너스가 ‘0’이라고 한다. 그만큼 기업은 냉혹하고 내년에는 매출 회복을 위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런데 민심을 먹고 사는 정치권이 이에 가장 둔감한 것은 황당하다. 선거에서 패배한 뒤에야 뼈를 깎는 반성을 한다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린다. 지난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은 김기현 대표가 사퇴하고,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불출마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1973년생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등장은 30대 이준석 전 대표 당선보다 더한 정치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이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반면, 압도적인 승리를 한 더불어민주당은 ‘이대로 쭉’만 외치고 있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최고위원들이 돌아가며 한 위원장을 비난하고 여전히 ‘한나땡(한동훈이 나오면 땡큐)’을 경쟁적으로 외친다. 그나마 이재명 대표 측근인 정성호 의원은 “한나땡이라고 하는 것은 1차원적 사고”라며 “수평선 너머에서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파도만 보지 말고 그 너머 바람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예전 친박·진박 감별이 지금 민주당에서 친명·진명 논쟁으로 부활하고 있다. ‘뜨거운 물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는데도 자신의 운명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2023년 마지막까지도 ‘김건희 특검법’을 야당이 단독 처리한 것처럼 올 한 해는 민생과 법치는 온데간데없고 방탄, 사법 리스크, 단독 처리, 특검, 신당 창당 등의 말만 무성했다. 국회가 민생 회복과 국가 발전에 되레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치판 자체를 갈아엎는 근원적인 ‘정치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욕구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요구가 2024년 4·10 총선을 계기로 분출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 승패는 절대 평가가 아니라 상대 평가로 결정된다. 늘 여야를 비교하기 마련이다. 여당은 한동훈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면서 혁신의 물꼬를 트고 있지만, 야당은 그 반대다. 워낙 정치예비군이 많다 보니 외부인사 영입도 시들하다. 한 위원장이 86 기득권 정치 청산을 주장한 바로 다음 날 민주당은 86 운동권 출신의 ‘반미 자주파’인 박선원 전 국정원 1차장을 인재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늘 그 진영에 있었는데 인재 영입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절대 변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이 대표는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 파기에 이어 선거제 약속도 파기할 조짐이다. 이제 이 대표가 무슨 말을 해도 “진짜 그런 줄 알았느냐”는 비아냥만 들린다. 여의도를 제발 떠났으면 하는 의원들은 필사적으로 공천을 노리는 반면, 그나마 합리적이라고 평가받던 초선의 경제전문가 홍성국, 판사 출신 이탄희, 소방관 출신의 오영환 의원은 정치의 환멸을 느끼며 불출마 선언을 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셈이다. 신진들은 떠나는데 7080인 박지원, 정동영 등은 컴백을 노린다.

이 대표는 일주일에 2∼3회 서초동 법원으로 출근하는데 한동훈 위원장은 여의도의 최대 관심 인물이 되고 있다. 동교동계와 전직 총리 3인방(이낙연·정세균·김부겸)의 원심력은 갈수록 커지는 형국이다. 이들의 만남은 잦아지는데 이 대표의 대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만약 친명 공천이 노골화하면 이낙연 전 총리가 추진하는 신당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돈봉투, 코인, 고문치사 등 부정적 이미지들만 떠오르는데 그저 윤석열 정부의 실정과 ‘김건희 특검법’에만 사활을 걸고 있으니 답이 없다. 세대교체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당내에서는 친명 vs 비명 얘기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 모든 난제의 해법은 이 대표 본인만이 갖고 있다. 그러나 당 대표직, 계양을 지역구 의원직 등 그 어느 것 하나 내려놓기 힘들다. 상대방 실수만 기다리는 ‘천수답 정치’로는 민심을 얻기 어렵다.

이현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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