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김정은의 ‘벼랑끝전술’[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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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26일 시작된 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2023년을 '위대한 전환·변혁의 해'로 평가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벼랑끝전술 성공보다는 실패의 기억이 더 선명하다.
북한은 벼랑끝전술을 통해 단기적으로 이득을 챙기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패착이었다.
북한 정권이 벼랑끝전술의 단맛에 빠져 경제난과 외교 고립에서 벗어날 기회를 스스로 내팽개침으로써 그 피해는 오롯이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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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26일 시작된 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2023년을 ‘위대한 전환·변혁의 해’로 평가했다. 2024년 신년사를 대신할 이번 회의를 통해 핵무력 고도화를 최대 업적으로 내세우며 자화자찬을 늘어놓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올해 30여 차례 핵·미사일 도발을 자행했다. 최근에는 군 정찰위성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연거푸 쏘아 올리며 ‘주저 없는 핵 공격’을 겁박했다. 국제사회를 상대로 ‘벼랑끝전술(brinkmanship)’을 구사하는 것이다. 김정은의 계산으로는 이쯤 되면 미국이 손을 들고나와야 맞는다. 하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을 비롯한 우방과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벼랑끝전술이 통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김정은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북한은 벼랑끝전술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1993년 1차 핵위기 때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핵물질 재처리로 긴장을 고조시켜 경수로와 중유를 제공받는 제네바합의를 끌어냈다. 2차 핵위기 때도 마찬가지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에 반발해 다시 핵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02년 10월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고농축우라늄 핵 프로그램’을 시인해 판을 흔들었다. 결국, 6자회담의 틀 안에서 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벼랑끝전술 성공보다는 실패의 기억이 더 선명하다. 남북 관계에서는 2015년 ‘목함지뢰 사건’을 들 수 있다. 국군 병사가 비무장지대(DMZ) 내 북한 목함지뢰에 크게 다쳤을 때 우리 측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대응했다. 북한은 ‘준(準)전시상태’ 선포와 ‘48시간 내 군사행동’ 최후통첩 등으로 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러나 우리의 단호한 대응에 부닥치자 결국 먼저 대화를 제안하고 합의서에 ‘유감’을 명기하는 첫 사례를 남겼다.
김정은은 미·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도 벼랑끝전술 실패를 경험했다. 싱가포르회담 목전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리비아 모델’ 발언을 빌미로 회담 재고를 언급하며 기선 제압을 시도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취소라는 초강수를 들고나오자 상황은 역전됐다. 김정은은 트럼프 발표 8시간 30분 만에 허겁지겁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통해 ‘유감’을 표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중재를 해 달라고 요청하는 궁색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벼랑끝전술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협박 수단이 위력적이어야 하고, 상대가 이에 굴복할 만큼 유약해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면 김정은의 벼랑끝전술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한반도 안정을 볼모로 하는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은 이미 구태의연하다. 한·미 연합 방위력으로 제압이 어려울 만큼 위력적이지도 않다. 국제사회는 과거 수차례 잘못된 경험에 비춰 북한의 협박에 굴복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이를 행동으로 보여준다.
북한은 벼랑끝전술을 통해 단기적으로 이득을 챙기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패착이었다. 반복되는 ‘도발-보상-도발’을 통해 국제사회의 대북 신뢰는 추락했고, 오히려 제재와 압박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북한 정권이 벼랑끝전술의 단맛에 빠져 경제난과 외교 고립에서 벗어날 기회를 스스로 내팽개침으로써 그 피해는 오롯이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김정은은 이런 현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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