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복 기원하는 ‘지신밟기’[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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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동물들이 모여 정초에 하게 될 '지신밟기' 놀이에 관해 의논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일은, 마을의 누구 집부터 '지신밟기'를 시작할 것인지 그 순서를 정하는 것입니다." 곰의 말에 너구리가 손을 들고 "그건 부잣집부터 도는 관례가 있으니 그대로 하면 될 것 같고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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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돌면서 지신 밟아
잡귀 쫓고 만복 비는 놀이도
순서·주역 논쟁만 벌이면
해법 찾긴커녕 주장만 남아
자기 이권만 내세우지 말고
모두의 행복 함께 생각해야
마을의 동물들이 모여 정초에 하게 될 ‘지신밟기’ 놀이에 관해 의논하고 있었다. ‘지신밟기’는 오래전부터 해 오는 세시풍속으로, 집집마다 지신(地神)을 밟아서 잡귀를 쫓아, 흉액을 몰아내고 만복이 깃들기를 비는 놀이이다. 고깔을 쓴 마을 풍물패들이 징·북·꽹과리·장구 등 악기를 두드려서 울리면, 사대부(士大夫)·팔대부(八大夫)·포수로 분장한 익살꾼들과 여러 모양의 가면을 쓴 많은 가장대(假裝隊)가 따라서 온 동네를 돌며 지신을 밟는다. 이때 스타로 조명받는 포수 역할은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재담꾼이 맡는다.
“지금부터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일은, 마을의 누구 집부터 ‘지신밟기’를 시작할 것인지 그 순서를 정하는 것입니다.” 곰의 말에 너구리가 손을 들고 “그건 부잣집부터 도는 관례가 있으니 그대로 하면 될 것 같고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말똥구리가 “그건 반대입니다. 평생 온전한 밥 한 번 얻어먹지 못하고 맨날 남이 배설한 똥이나 주워 먹고 사는 우리 같은 가난한 동물은 평생 찬밥이란 말입니까”하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때부터 여러 동물의 백가 쟁투가 시작되었다. “같은 마을에 살면서도 다른 동물들에게 피해를 주는 집에는 가지 맙시다!” “맞아요, 저 못된 뻐꾸기는 우리 둥지에다 몰래 알을 낳아 놓고 갔어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부화시켰더니 먼저 깨어난 뻐꾸기 새끼가 내 친자식들을 다 밀어 떨어뜨려 없애 버리고 혼자서만 내가 잡아 온 먹이를…. 흑흑흑, 그러니까 난 원수를 키웠던 거예요, 흑흑흑!” 뱁새가 통곡하자, “난 또 어떻고요. 지난 구월에 내 작은아들이 뱀을 보고 놀라서 펄쩍 뛰었더니 독이 잔뜩 오른 뱀이 물어 지금까지도 의식을 못 찾고 있어요. 그러니 뱀의 집에는 들르지 맙시다”라며 소가 뿌드득 이를 갈며 소리쳤다.
그러자 뱀이 억울하다는 듯이 “나도 할 말이 있다고. 나도 예의를 지키는 상대는 물지 않아. 전번에는 콧대 높기로 소문난 인간이라는 동물이 나를 보자마자 딱 그 자리에 서더니 허리를 굽히며 “어르신 행차하셨습니까, 편히 지나가시지요 하는 거야! 그러니 내가 물 수가 있겠어? 그때 송아지는 나를 보자마자 놀라 뒷다리로 펄쩍 뛰어오르며 갖은 오두방정을 떠니 가뜩이나 간이 작은 나도 놀라서 엉겁결에 물게 된 거라고”라고 변명했다.
언제 왔는지 이들의 토론을 지켜보던 산토끼는 “쯧쯧쯧, 저런 수준 낮은 토론만 늘어놓는 회의는 시간 낭비야” 하더니 숲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저만치에 호랑이가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호랑 대왕님, 왜 그러세요?” 멀리서 산토끼는 호랑이를 지켜봤다. “에∼구, 이제 너무 늙어 죽으려나 봐. 기력이 없어 일어날 수가 없어.” 호랑이는 금세라도 숨이 멎을 듯이 말했다. ‘야호! 드디어 날 괴롭히던 호랑이가 죽는구나.’ 산토끼는 어깨춤을 추며 호랑이 앞으로 달려가 호랑이 코를 톡톡 치며 말했다. “호랭아, 호랭아! 그러니까 왜 그리 우리 동물들을 괴롭혔냐? 그것도 굶어서 죽는다니. 에궁 슬퍼라 으아아앙∼.” 그 울음소리와 함께 ‘휙’ 하고 한 줄기 바람이 이는가 했더니 산토끼는 호랑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내가 명색이 호랑이야, 이놈아!” 호랑이는 한 끼 잘 먹었다는 듯 기지개를 죽 켰다.
해가 꼴딱 질 때까지 지신밟기 토론을 했지만, 주제마다 꼬이고 이해 충돌이 생겨 마침내는 서로 멱살을 잡는가 하면 차마 듣기도 민망한 험구(險口)까지 쏟아져 난장판이 되었다.
“야, 이놈아! 포수 역할은 네가 지금까지 내리 6년이나 해먹었잖냐. 이제 나도 좀 해 보자. 저, 곰 의장님! 올해 지신밟기 포수 역할은 저를 공천해 주세요. 만약 안 해 주시면 저는 이 마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렵니다.” 닭이 볏을 곧추세우며 열을 올리자, “저걸 확~! 삼계탕이나 고아 먹어 버릴까 보다!” 하고 복슬강아지가 힐난했다. 닭은 더욱 분개하며 “그래 너 같은 개는 인간들한테 갖은 애교나 부려, 국회에서 ‘개 식용 금지법’까지 만들었다 하데?”
토론을 하면 할수록 더욱 험악해지자 가장 나이가 많은 염소가 끼어들었다.
“여러분! 우리가 왜 모였습니까? 우리 마을 잘살자고 모인 것 아닙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 모두 ‘어떻게 하면 함께 잘사느냐’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허구한 날 무엇 하나 합의는 하지 못하고 싸움박질이나 하고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동물들의 대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대립하면서 경쟁적이고 공격적으로 논쟁을 벌인 결과는 오로지 승패로 귀결되는 게 토론입니다. 아무리 100분 동안 난상 토론해 본들 남는 건 각자 주장뿐입니다. 저마다 의견을 내놓고 이것을 서로 검토하고 더하고 빼서 가장 원만한 해결 방법을 서로 협동적으로 찾아내는 의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염소의 말이 끝나자마자 ‘제야의 종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뎅∼ 뎅∼!”
순간, 조금 전까지 목청 높여 싸우던 닭과 개, 뱁새와 뻐꾸기는 물론 모든 동물이 서로 얼싸안고 소리쳤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건강하세요!” “좋은 소식만 들으세요!” “즐겁고 행복한 일이 일 년 내내 주렁주렁 열리세요!” “우리 서로 의논하며 사이좋게 삽시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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