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디알로고] “기초과학 투자 늘린 국가, 경제도 발전했다”
”중성미자는 우주의 신비 밝힐 열쇠
지하 1000m서 검출, 노벨상 4번 나와
한국도 독자 시설 갖추면 세계 이끌 것
기초과학 연구는 미래 세대 위한 투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란 책에서 당시 주류 이론이던 천동설을 배격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이의 ‘디알로고(Dialogo·대화)’처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지하 1000m 아래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과학자들이 있다. 남극의 얼음과 산속 폐광(廢鑛)을 채운 물에서 희미하게 나타나는 중성미자(中性微子·neutrino)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이다. 중성미자는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의 하나지만, 질량이 거의 없고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을 하지 않아 ‘유령 입자’로 불려왔다. 지금도 매초 엄지손톱만 한 면적마다 1000억개씩 지구를 지나간다.
과학자들은 중성미자를 통해 우주의 기원과 진화를 밝히고 있다. 중성미자는 우주가 탄생한 빅뱅(Big Bang·대폭발) 직후에도 나왔고, 태양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이나 초신성 폭발에서도 나온다. 원자력발전소의 핵분열에서도 출현한다. 지금까지 네 차례나 노벨물리학상을 배출했을 정도로 중성미자는 현대 물리학과 천문학의 핵심 연구 주제이다.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64) 일본 도쿄대 교수는 유령 같은 중성미자에도 질량이 있음을 처음으로 밝혀 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앞서 스승인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도쿄대 교수 역시 중성미자 연구로 200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가지타 교수는 지난 21일 서울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중성미자 연구는 처음에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 차원에서 연구했지만, 지금은 천문학에서 연구 성과가 쏟아지고 있다”며 “한국 연구자들도 세계적 수준에 있어 자체 검출시설만 갖추면 국제 연구를 주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성미자 연구는 노벨상의 보고(寶庫)
–가지타 교수 전에도 세 번이나 중성미자 연구에 노벨상이 수여됐다. 어떤 연구인가.
“1988년 미국 과학자 세 명이 입자가속기에서 나온 중성미자를 관측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고, 1995년 미국 물리학자 라이너스는 원전에서 나온 중성미자를 처음으로 관측했던 공로로 역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스승인 고시바 교수는 초신성이 폭발할 때 나온 중성미자를 관측해 200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이전 연구는 중성미자가 다양한 기원을 밝혔다면, 가지타 교수는 특성을 처음으로 밝혔다.
“1998년 먼 우주에서 온 중성미자가 지구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종류로 바뀌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진동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진동이 있다는 것은 전자·타우·뮤온 등 세 가지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고, 이 질량이 종류별로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공동 수상자인 아서 맥도널드 캐나다 퀸즈대 교수는 2001년 태양에서 온 중성미자에서 이 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을 재확인했다.”
–일본의 노벨상은 모두 같은 연구시설에서 나왔다고 들었다.
“고시바 교수는 일본 기후현 히다시 가미오카 폐광의 지하 1000m에 물 4500t을 담은 1세대 가미오칸데 검출시설에서 중성미자를 관측했다. 나는 가미오칸데의 업그레이드판인 2세대 슈퍼가미오칸데에서 중성미자가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종류가 바뀐 것을 관찰했다.”
–가미오칸데에서는 어떻게 중성미자를 검출하나.
“다른 입자들은 산을 통과하면서 걸러지고 물질과 거의 반응을 하지 않는 중성미자만 지하 1000m 지하까지 올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중성미자라도 지하 수조를 지나면서 아주 드물지만 물을 이루는 원자, 전자와 부딪힌다. 그러면 연못에 돌멩이를 던질 때 나타나는 파문(波紋)처럼 원형으로 빛의 충격파가 생긴다. 광센서로 이를 검출하는 것이다.”
–1세대와 2세대 검출시설의 차이는 무엇인가.
“수조에 담긴 물의 양이 다르다. 슈퍼가미오칸데는 폐광 지하에 있는 지름 39m, 높이 41m 탱크에 물 5만t이 들어있다. 1세대 가미오칸데보다 10배 늘어난 양이다. 그만큼 중성미자가 원자핵이나 전자와 부딪힐 가능성이 커서 더 많이 검출할 수 있다.”
◇입자물리학에서 천체물리학으로 진화
–중성미자 연구가 지금도 계속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중성미자가 어디서 나오는지, 또 특성이 어떤지 연구하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중성미자를 이용해 태양이나 초신성을 관측하는 연구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과학계에서 말하는 중성미자 천문학을 말하는가.
“지금까지는 빛으로 우주를 관측했다. 빛은 별 표면에서 나오는 낮은 에너지이다. 별이 폭발할 때 중심부에 있는 훨씬 더 큰 에너지는 중성미자를 통해 우주로 방출됐다고 추정된다. 중성미자를 통해 별의 폭발도 과거와 달리 연구할 수 있다. 중성미자는 투과성이 강해 왜곡 없이 우주를 관측할 수 있다.”
–최근 중력파 천문학이 우주 연구의 새로운 도구로 부상한 것과 관련 있어 보인다.
“시공간을 뒤트는 중력에너지가 물결처럼 퍼지는 중력파를 통해 별이 충돌하거나 블랙홀이 합쳐지는 것을 관측할 수 있다. 블랙홀은 빛조차 나오지 못해 직접 관찰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중력파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초신성 폭발은 빛뿐 아니라 중력파와 중성미자로도 볼 수 있다. 중력파 천문학과 중성미자 천문학이 상호보완 관계이다.”
–가지타 교수는 현재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가.
“나 자신이 중력파 천문학과 중성미자 천문학을 결합한 셈이다. 슈퍼가미오칸데에는 중성미자 검출장치 외에도 중력파를 검출하는 시설이 있다. 중력파를 처음 검출한 과학자들 역시 2017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일본과 한국 잇는 1300㎞ 중성미자 통로
–이번에 한국중성미자관측소(KNO, Korea Neutrino Observatory) 국제포럼에 참석했다. KNO는 어떤 의미가 있나.
“한국에서 지하 1000m에 규모가 80만㎥ 규모로 중성미자 검출시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다. 실현되면 현재 최대 규모인 중국의 진핑 지하 실험실(33만㎥)을 넘는 세계 최대 관측소가 된다. 그뿐 아니라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하이퍼카미오칸데와 연계하면 더 큰 연구를 할 수 있다.”
–어떻게 일본과 한국의 중성미자 검출시설이 연결되나.
“하이퍼가미오칸데는 일본 양성자가속기(J-PARC)에서 쏜 중성미자를 가까운 곳과 먼 곳 두 군데에서 검출할 계획이다. 한국 과학자들이 J-PARC에서 1300㎞ 떨어진 경북 보현산과 대구 비슬산 중 한 곳에 KNO를 두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거리가 멀수록 중성미자 변환과정을 더 많이 알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중성미자 검출시설이 연결되면 영화에 나와 잘 알려진 반(反)물질(antimatter)의 정체도 밝힐 수 있다고 들었다.
“반물질은 물질과 질량은 같고 전기적 성질만 정반대이다. 우주 탄생 직후 물질과 반물질이 같은 양으로 존재했지만, 지금은 왜 물질만 남아 있는지 미스터리이다. 양성자가속기에서 반중성미자를 쏘고 한국까지 오는 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해 이른바 ‘물질과 반물질의 대칭성 깨짐(CP-violation)’을 연구할 수 있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반물질을 만들면 지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데.
“반물질을 만드는 데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지구가 사라질 정도로 반물질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영화의 설정은 현실적이지 않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세계 각국이 중성미자 연구시설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남극에선 얼음 속 2㎞ 지하에 중성미자 검출시설인 아이스큐브가 운영되고 있다. 일본과 미국, 중국에서도 지하 검출시설이 잇따라 세워졌다. 명문화하지는 않았지만, 각각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 중성미자 연구는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다. KNO가 세워지면 역시 국제 학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
–한국의 중성미자 연구수준은 어떤가.
“한국 과학자들은 중성미자 변환, 진동 연구에서 이미 굉장한 성과를 냈다. 과학계 전체로 보아 상위 10% 논문 수에서 이미 일본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과학 예산 늘어난 나라가 GDP도 증가
–중성미자 검출시설에는 수백억, 수천억원이 들어갔다. 지금 건설 중인 하이퍼가미오칸데는 5000억원 이상이 들어간다고 들었다. 어떻게 정부를 설득했나.
“먼저 과학자들에게 하이퍼가미오칸데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시키고, 그다음에 정부가 과학계에서 이게 정말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한다. 그리고 일본 정부에 정식 요청한다.”
–과학연구 예산은 결국 국민이 낸 세금인데, 국민에게는 어떻게 설명하나.
“대중강연이나 인터넷을 통해 알렸다. 언론매체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연구는 작은 부분이라도 하나씩 해나가면 되지만 대중강연은 작은 것보다 무엇이 재미있는지 바로 전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 어려웠다. 나 자신이 이 연구를 얼마나 재미있게 생각하는지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일본은 과거 과감하게 중성미자 연구에 투자하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이 연구개발(R&D) 투자를 다른 나라만큼 늘리지 않으면서 지난 20년 사이 인용횟수 상위 10% 논문 수가 세계 4위에서 13위로 곤두박질쳤다.
“일본이 대학 연구비를 매년 1%씩 줄이면서 연구력이 크게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공계 박사가 늘었지만, 일본은 점점 줄고 있다. 학계 일자리가 줄었고 산업계에서도 박사를 대우하지 않고 있다.”
–한국도 처음으로 정부가 R&D 예산을 줄여 논란이 됐다. 일본의 예를 들면서 R&D 예산 삭감이 과학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 과학의 현실을 굉장히 잘 본 것이다. R&D 투자의 적정 규모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나라가 경제도 강하다. 과학연구 예산이 늘어나면 국내총생산(GDP)도 같이 올라가는 상관관계는 분명하다.”
–과학이라고 하면 반도체나 항공기를 만들어낸 실용적 가치를 먼저 생각한다. 그렇다면 가지타 교수가 하는 중성미자나 중력파 연구는 어떤 실용적 가치가 있나.
“반도체는 양자역학을 이해하면서 가능했다. 항공기도 물리 현상을 이해했기에 하늘을 날 수 있었다. 중력파나 중성미자 연구가 결과적으로 실용적 가치를 낼 수 없을지 몰라도 지식의 축적 자체도 중요하다. 기초과학을 해야 미래 세대가 쓸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가지타 다카아키 교수
1959년 일본 사이타마현 히가시마쓰야마시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사이타마대를 나와 1986년 도쿄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도쿄방사선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1992년부터 도쿄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지타 교수는 지난 1998년 슈퍼가미오칸데라는 지하 실험시설에서 우주방사선이 지구 대기에 부딪히면서 나온 중성미자가 다른 종류로 바뀌면서 진동하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이를 통해 중성미자에도 질량이 있음을 입증했다. 이 공로로 2015년 노밸물리학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슈퍼가미오칸데에서 중력파 검출 실험에 집중하고 있다.
가지타 교수는 다시 태어나면 천문학이나 생물학을 연구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과학만 바라보는 학자이다. 그렇다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괴짜 이미지와는 다르다. 가지타 교수는 늘 100명이 넘는 동료들과 같이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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