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 '조리돌림' 구경한 사회, 과연 달라질까?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27일 숨진 배우 이선균이 29일 영면에 들었다. 자연인으로서 48세의 삶, 배우로서 24세의 삶의 마침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눈만 감는 것이 아니다. 입도 감는다. 슬픔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
하지만 이 슬픔이, '슬픔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0월 마약 투약 혐의가 불거진 후 죽음에 이르기 되는 과정까지, 경찰·언론 및 각종 유튜브 채널들을 통한 '조리돌림'이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언제든 유사한 일이 발생할 수 있고,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선균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마약 투약 여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유흥업소 종업원 A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의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생활이다. 법적 영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공과 사를 구분하라는 말이 있듯, 그의 마약 복용 혐의를 다투는 수사 과정에 사생활이 개입되는 건 온당치 않다.
객관적 사실만 보자. 이선균은 간이 시약 검사를 비롯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조사에서도 '음성'을 받았다. "마약을 하지 않았다"는 이선균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결과다.
이제 남은 건 A의 일방적 주장이다. 하지만 "투약했다"는 그의 주장은 이미 조사 결과를 통해 무너졌다. 게다가 A는 마약으로 처벌 전력이 있는 전과자다. 국가 기관의 조사 결과보다 전과자의 주장에 더 신뢰를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선균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19시간에 걸친 3차 조사를 마친 후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과학적 검증을 받겠다는 의미다. 이번 의혹에 맞서며 명예를 지키겠다는 의지다.
그랬던 그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성실히 경찰 조사에 임하며 결백을 입증해가던 그의 행보와는 사뭇 다른 선택이다. 왜일까? 이는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한 부담감'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이미 '음성' 판정을 받으며 그가 무혐의를 받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의 음성 판정 즈음, KBS가 9시 메인 뉴스에서 고인과 A의 대화 녹취록을 공개한 것은 우연으로 봐야 할까? 공개된 녹취록에서 투약을 의심할 만한 대화 내용이 일부 있었지만, 직접 증거가 될 수준은 아니었다. 아울러 이번 사건의 본질과 무관하게 두 사람의 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 내용도 여과 없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선영 MBC 아나운서는 27일 SNS에 "KBS의 그 단독 보도를 짚고 싶다. A씨와 통화에서 오고 간 은밀한 대화. 고인의 행동을 개별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그 보도가 어떤 사람의 인생을 난도하는 것 외에 어떤 보도 가치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정치권도 거들었다.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가릴 것 없이 "KBS는 범죄사실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없는 대화 내용을 유출하면서 고인이 생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의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 "언론이 이선균의 사생활을 무차별하게 폭로했다는 것이 밝혀지고, 마약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사적 대화가 나왔는데 이게 뉴스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고 물었고, 김 후보자 역시 "뉴스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KBS의 보도가 문제인 것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녹취록 공개에 대한 도덕적 허들을 낮췄기 때문이다. 고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하루 전, 몇몇 유튜브 채널 은 녹취록을 2개 더 공개했다. 하나는 이선균과 A의 대화였고, 또 다른 하나는 A와 어떤 남성의 대화였다. 이 직후 이선균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녹취록 폭로와 이선균의 죽음 간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확답하긴 어렵다. 하지만 고인이 이같은 폭로로 인해 가족을 비롯해 주변이들이 괴로워하는 상황을 극도로 힘겨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일종의 '망신주기'다. 고인에게 인간적인 모멸감을 줘 도무지 견디기 어렵게 만든 형국이다. 현재 수사 추이라면 그는 가수 지드래곤과 마찬가지로 무혐의 처분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자 마약 투약 혐의 자체가 아닌, 그와 A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모양새가 빚어졌다.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다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말이 있다. 마약 투약 혐의(메시지)를 입증하기 어려우니, 이선균(메신저)을 견디기 힘들게 만드는 식이다.
게다가 TV조선은 고인의 유서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유족이 '밝히길 원치 않는다'고 했으나 버젓이 보도됐다. 유족이 공개하지 않은 유서의 내용은 과연 어떤 루트를 통해 유출된 것일까? 이번 수사 과정 속에서 경찰이 여러 의혹에 휩싸이며 질타를 받는 이유다.
하지만 경찰·언론·폭로 유튜버만 탓할 일일까? 고인이 사망하기 전, 대중은 과연 이 사건을 어떤 식으로 소비했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보자"며 중립성을 유지했나? 지금의 분위기처럼 이선균의 치적에도 관심을 보였을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팝콘을 먹으며 고인이 출연한 영화를 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가십으로 쉽게 소비하고 떠들어댔다.
작사가 김이나의 고백을 들어보자. "어디서 흘러나온지도 모르는 녹취록을 이어폰을 꽂고 몰래 들으며 어머어머 하고, 가십성 콘텐츠도 클릭해보고, 마지막에 '너무 사람 망신주기 하네, 심하다'라는 말로 스스로 면죄하던 내 모습이 선명해서 차마 감히 추모도 못하는 마음." '뜨끔'했을 이들이 적지 않을 자기 반성이다.
이선균은 떠났다. 반성과 추모는 남았다. 그런데 궁금하다. 또 다른 사건 앞에서 우리는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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