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하늘: 거대한 붓질 [아트총각의 신세계]
영원하지 않은 세상 시각화
땅의 내외부 담는 대지미술
거대한 추상 드로잉의 향연
우리 앞 사물과 존재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늘 변하고, 점차 사라지며, 다시 형상화한다. 그러다가 쓰임이 필요 없는 순간이 오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듯 사라져버린다. 이를 불교에선 '일체만물이 공하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영원하지 않은 세상을 영원한 진리란 관념으로 시각화하는 여성 작가가 있다. 대지미술(earthworks) 작가인 지나 손이다. 갤러리 엑스투(Gallery X2)가 '疊疊: 첩첩'으로 명명한 그녀의 작품을 2024년 1월 7일까지 전시한다. 지나 손을 알아보기 전에 조금은 낯선 대지미술의 장르부터 살펴보자.
대지미술은 지구 표면이나 땅의 내ㆍ외부를 캔버스 삼는 장르다. 그 위에 작가가 자신의 철학을 담은 형상을 디자인하는 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 용어는 1968년 로버트 스미슨 작가가 뉴욕 드웬 화랑에서 '어스워크(EarthWorks)'란 이름의 전시회를 열면서 등장했다.
흥미롭게도 1968년은 아방가르드(Avant-gardeㆍ기존 이념이나 가치를 부정한 새로운 흐름의 예술)가 펼쳐졌던 시기와 맞물린다. 지금의 인공지능(AI)과 미디어아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C언어(컴퓨터언어)와 유닉스(Unix)가 탄생한 시기(1969년)와도 비슷하다.
미술평론가인 아서 단토가 저서 「예술의 종말 이후」에서 "동시대 미술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예술가"라고 했던 앤디 워홀의 대표작 'Brillo Box'가 공개된 것도 이 무렵이다. 예술은 캔버스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대지미술은 이렇게 큰 변화의 시기에 등장했다.
각설하고 이제 지나 손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보자. 강변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6명의 여성이 연막탄을 들고 서 있다. 연막탄의 연기는 자연이라는 화폭에 흔적을 그리며 올라간다. 하늘에서 바라본 연기는 마치 먹물을 풀어놓은 듯 거대한 추상 드로잉이다.
잠깐 동안 넋을 놓고 창공의 붓질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공기와 바람은 '허공'이란 캔버스에서 붓질의 흔적을 순식간에 지운다. 그러자 허공은 이내 본래의 모습을 돌아온다. 이는 지나 손만의 스타일로 완성한 대지미술로 '허공'이란 작품이다.
이처럼 지나 손은 석기시대 이후 인간을 품어온 웅장하면서도 거대한 자연에 자신만의 철학을 새겨 '깨달음'을 표현한다. 그녀가 쉰둘이란 늦은 나이에 프랑스 베르사유 시립미술대학에 편입한 것도 이런 깨달음을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가는 "이 작품을 왜 만들었느냐"고 물으면 으레 이렇게 답한다.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어쩔 땐 예술혼의 과잉 표현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나 손의 작품은 그렇지 않다. 그녀는 정말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삶의 변곡점에서 혼자란 생각이 들면 자신이 '한없이 작은 존재'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이들에겐 지나 손의 작품이 위안을 줄 것이다. 자연에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는 걸 몸소 체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김선곤 더스쿠프 미술전문기자
sungon-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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