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미래 동시에 통찰하는 한 해의 시작[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2023. 12.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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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송구영신
■ 오비디우스 ‘로마의 축제들’
야누스의 상징은 입체적 통찰과 헤아림의 지혜 우리가 닮아야해
새해 여는 ‘문의 신’전쟁의 문 닫히고 평화가 오길
게티이미지뱅크

이맘때쯤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송구영신’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서양에서 이에 가장 어울리는 신화 속 주인공은 바로 야누스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야누스가 하늘의 신들 가운데 유일하게 등 뒤쪽에서 일어나는 일과 앞쪽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노래했다. 우리처럼 얼굴이 앞을 향하고 있지만, 동시에 뒤통수에도 얼굴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통상 로마인들은 야누스의 두 얼굴을 젊은이와 노인의 결합으로 보았다. 등 뒤를 볼 수 있는 노인의 얼굴은 과거를 돌아보는 반성의 통찰력을 가진 반면, 앞을 볼 수 있는 청년의 얼굴은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비디우스는 ‘로마의 축제들’의 ‘1월 1일 편’을 야누스에게 바치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내 노래의 출발점, 두 얼굴의 야누스여, 소리 없이 흘러가는 한 해의 근원이여, 그대의 찬란한 신전의 문을 열어주소서.”

그는 오른손에 지팡이를, 왼손에 열쇠를 가지고 있어 모든 것을 열 수도, 닫을 수도 있다. 그는 왼손의 열쇠로 모든 것이 시작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고, 모든 것이 잘 마무리되도록 문을 닫아주는 우주의 수문장인 셈이다. 그가 열쇠로 문을 열어줘야 마침내 새로운 한 해가 열리고 새해가 시작된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한 해의 첫 달을 야누스에게 바치며 ‘야누스의 달(Januarius mensis)’이라고 불렀고, 이것이 지금까지 서양인들의 전통에 남아 영어로는 1월을 ‘제뉴어리(January)’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 해의 문을 여는 야누스, 사실 그 이름 ‘야누스’가 라틴어인 ‘야누아’에서 왔는데, ‘문(門)’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야누스는 ‘문의 신’인 셈이다. 그는 말한다. “모든 문은 이중의 이마를 가지고 있으니, 안쪽과 바깥쪽에. 바깥쪽 얼굴은 인민들을 바라보며, 안쪽 얼굴은 화로를 바라본다.” 따라서 문의 신인 야누스 또한 안팎을 한꺼번에 바라보며 동시에 헤아리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르네상스의 화가 라파엘로는 바티칸에 있는 교황의 서재 ‘서명의 방’ 남쪽 벽면에 지혜를 상징하는 여성의 얼굴을 야누스처럼 그려놓았다. 지혜란 야누스가 그렇듯이 공간적으로는 나의 안과 밖을 동시에 살피면서,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미래를 함께 통찰하며 나의 삶을 슬기롭게 관리하는 능력이라는 뜻을 담아낸 것이다. 그러니까 야누스의 두 얼굴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나 변덕스러움의 상징이 아니라, 입체적인 통찰과 헤아림의 지혜를 상징하는 것이니, 우리가 똑 닮아야 할 모습이다.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는 1년을 열 달로만 잡고, 새해의 시작을 3월로 정했다. 겨울철 두 달은 아예 계산에 넣지 않은 채로, 새해를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물루스를 이어 왕이 된 누마는 로물루스가 셈에 넣지 않은 겨울의 두 달에 이름을 주고, 지금의 1월을 새해의 시작으로 삼고 야누스에게 바쳤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지금의 1월 1일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동지였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한 오비디우스의 설명은 야누스가 직접 말하는 것으로 소개된다. “동지는 묵은 태양이 새로운 태양으로 바뀌는 날이라, 태양도 한 해도 똑같이 그때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야누스’가 추운 겨울에 새해 첫날을 열어 준 까닭에 한 해의 첫날이 3월 1일에서 1월 1일로 바뀐 것이다.

로마에는 야누스의 문이 있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그 문이 열리면 전쟁이 시작되고, 그 문이 닫히면 전쟁이 그치면서 평화가 온다고 믿었다. 야누스가 말한다. “내 가혹한 빗장이 전쟁을 가둬두지 않으면 온 세상이 살육의 피투성이가 될 것이다.” 송구영신의 시점에 즈음해 여러모로 야누스의 두 얼굴을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새해에는 전쟁의 소문이 모두 그치도록 야누스의 문이 굳게 닫혔으면 좋겠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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