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조각가와 K-조각] <13>레베카 호른, 생명력 넘치는 메타언어의 세계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진 레베카 호른(79·사진)은 안젤름 키퍼와 함께 독일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국민작가로 불린다. 20대 후반이었던 1970년대 초반부터 퍼포먼스, 영화, 오브제, 조각, 키네틱 기계조각, 페인팅, 드로잉, 사진 등 다양한 장르와 미술형식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파격적인 실험을 선보였다.
기성의 가치와 미술 장르의 경계를 뛰어 넘으려는 호른의 작업은 특유의 예리한 직관을 바탕으로 당대 사회의 금기에 도전하며 일종의 부재와 현존으로서의 새로운 정신질서와 시공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어린 시절, 의류 관련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다양한 유럽 국가와 지역의 문화를 몸으로 경험하며 성장한 호른은 그녀만의 날카로운 상상력과 독특한 형식, 매체를 통해 지난 경험과 기억을 예술적으로 직조해나갔다.
몸, 의복, 신화, 전설, 종교, 제도, 사물과 자연습성, 내부와 외부의 사이, 관계 등을 모티프로 독창적 사회적, 예술적 담론을 예의 창출했다. 호른은 훗날 어린 시절의 자신이 그러했듯, 스스로를 ‘세계 사이의 방랑자(wanderer between worlds)’라 불렀다.
함부르크조형예술학교에서 조각을 배울 당시에는 문학에 심취해 프란츠 카프카, 마르셀 프루스트 같은 여러 유럽 문학가들의 정신적 자취를 추체험하고 수많은 문학서적을 탐독했다. 호른 작품세계 전반에 걸쳐 있는 문학적 상상력과 분위기,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어법과 초현실적 상징, 알레고리 등은 이 시절에 대부분의 얼개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작업을 ‘잃어버린 시간으로서의 프루스트적 여정’으로 돌아보는 이유다.
호른은 특정 시공에서의 기억과 경험을 특유의 상상력으로 팩션화하며 시간적 경험을 공간적 경험으로 전치시킨다. 특정 내러티브로 구조화하기보다는 관객을 일상의 현실에서 끄집어내어 자신의 예술세계로 인도하려는, ‘의식(儀式)’의 차원을 상대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젊은 호른은 심각한 폐질환으로 세상과 격리됐던 1년여의 요양소 생활로 인해 작업의 일대 전환을 경험한다. 그녀가 무거운 방식과 재료로부터 벗어나 깃털, 면, 붕대 등과 같은 가벼운 재료들로 몸을 고안하거나 바느질로 꿰는 조립 작업을 선보인 것도 이러한 고립적 한계상황으로부터 비롯한 소통의지로 보인다.
아카데미 제도권 교육을 마친 호른은 자신의 몸과 신체기관을 모티프로 한 퍼포먼스를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퍼포먼스의 주요 개념은 ‘의인화된 기계’와 ‘사물의 존재성’이었다. 몸에 관계하는 인공 보조 장치, 혹은 상징적인 의미로 등장하는 호른의 의인화된 기계는 현대 기계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이나 알레고리라기보다는 의인화된 자동기계가 인간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통해 존재의 실체를 드러내고 전하려는 호른 특유의 의식 기제로 이해된다.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용도로 사용됐던 필름과 비디오는 이후 또다른 소통, 공감기제로서의 영화 형식으로 발전했다. 일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하기도 했던 호른의 영화는 다양한 기계 설치물과 오브제들을 함께 선보였는데 이들은 개별적인 조각 작품으로 여러 차례 대중에 소개되기도 했다. 1980년대 들어 등장한 소형 전기모터에 의해 움직이는 본격 ‘키네틱 기계 조각’들이 대표적인 그것으로 상당수는 영화 속에 작가의 분신처럼 자리했던 소품들이다.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채택하고 실험하며 이들이 창출하는 강렬한 상호 작용을 온몸으로 강조해온 호른의 작업에 있어 영화와 조각, 영혼이 존재하는 듯 움직이는 키네틱 기계조각과 공감각적인 설치의 긴밀한 관계는 호른의 예술의 힘이자, 생명력 넘치는 ‘영매(靈媒)적 메타언어’의 세계를 이해하는 핵심 요소다. 매체 간의 의미 있는 구조적 상조(相助), 상호관계를 줄곧 집중 탐색해온 호른의 작업은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장르 경계 해체와 확장에 직접적인 동인이 됐으며 현재도 유효하다.
호른은 1973년 베를린 소재 르네 블록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신체 공간'을 시작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 및 전시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녀는 평생에 걸쳐 서로 다른 영역들의 사이와 간극에 주목하고 내부와 외부의 상호접점을 찾으려 애썼으며 시간과 공간이 하나 되는, 육체적, 정신적 의식 분열이 촉발하기 직전의 순간, 찰나의 틈새, 경계 등을 천착했다. 가히 독일 ‘무당’이라 하겠다. 2007년 한국에서의 개인전 개막식에서 '만신(萬神)'으로 불리던 한국의 대표적 인간문화재 김금화 선생(1931~2019)과의 뜨거운 만남은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박천남 2023한강조각프로젝트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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