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 이달의 6·25전쟁영웅…부상병·민간인 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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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6‧25전쟁) 중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한국에 파견돼 전쟁 부상병과 민간인들의 목숨을 구한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가 '2024년 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됐다.
1951년 7월24일 유틀란디아는 승무원 교대와 의약품, 기자재 수령을 위해 부산항을 떠나 2차 파견을 준비한 뒤 같은 해 9월29일 덴마크를 출항, 11월16일 부산항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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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한국전쟁(6‧25전쟁) 중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한국에 파견돼 전쟁 부상병과 민간인들의 목숨을 구한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가 '2024년 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됐다.
29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1950년 6월27일 유엔이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결의하자 덴마크 정부는 의료지원 제공을 결정하고, 유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먼저 지원 의사를 통보했다.
4개의 수술실과 356개의 병상에 외과·내과·치과·방사선과를 둔 유틀란디아는 1951년 1월23일 덴마크 코펜하겐을 떠나 3월7일 부산항에 도착했다. 유틀란디아 도착 당시는 유엔군이 38도선으로 진출하기 위해 재반격작전을 전개하며 전상자가 늘고 있었다.
이에 최신 의료시설, 장비, 의약품 등을 갖춘 유틀란디아는 빠르게 부상병들을 치료했고, 일부 의료진은 육지로 나가 의료지원 활동을 전개했다.
1951년 7월24일 유틀란디아는 승무원 교대와 의약품, 기자재 수령을 위해 부산항을 떠나 2차 파견을 준비한 뒤 같은 해 9월29일 덴마크를 출항, 11월16일 부산항에 돌아왔다.
이후 전상자 수용과 의료지원 업무를 시작한 유틀란디아의 일부 의사와 간호사들은 휴가를 반납하고 전방지역의 야전병원이나 의무부대를 방문해 외과 환자들의 수술을 지원하기도 했다.
유틀란디아는 휴전협상의 영향으로 전쟁이 교착상태에 이르자 1952년 3월29일 다시 부산항을 떠나 덴마크로 향했다. 이후 내과, 외과, 안과, 신경외과, 치과로 진료 과목을 확대한데 이어 의료 요원과 행정요원도 증원돼 11월20일 이번엔 인천항으로 돌아와, 전상자 치료와 함께 병원선 헬리콥터로 응급환자를 후송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모두 세 차례에 걸친 파견 기간 중 유틀란디아에 근무한 인원은 630명이었으며, 이 기간 동안 부상병 4981명과 6000명 이상의 민간인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유틀란디아는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보유하고 있던 의약품과 의료기자재들을 유엔한국재건단을 통해 민간병원에 기증했고, 1953년 8월16일 인천항을 떠났다.
유틀란디아는 정전 이후에도 6‧25전쟁 의료지원국인 노르웨이, 스웨덴과 협조해 국립의료원 설립에 참여하기도 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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