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에게 총구를 돌리는 군
[세상읽기]
[세상읽기] 김종대ㅣ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도무지 21세기 민주국가의 공식 문서라고 믿어지지 않는 국방부의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가 발간되었다. 그 핵심 내용을 살펴보면 딱 5공화국 시절의 인식과 사고체계다. 1979년 12월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찬탈한 일군의 군부는 국가안보가 확립되려면 사회가 안정되어야 한다며 ‘내부의 적’들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작 북한이 아니라 시민들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1983년 버마(미얀마) 아웅산 묘역을 참배하던 중 북한 테러로 다수의 국무위원 등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전두환 정권은 북한을 응징하지 못했고,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테러 때도 주범이라던 북한에 책임을 묻지 못했다.
말로야 북한을 없애기라도 할 듯 험악했지만 휴전선 너머에 있는 북한 정권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두환은 유독 가까이 있는 동료 시민들에게는 무자비했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유혈로 진압하고 시민 4만명을 삼청교육대에 입소시켜 사회를 정화한다고 했다. 국회를 해산하고 다수 인사를 가택에 연금하여 정치를 파괴했다. 이번 국방부의 정신전력교육 교재가 동료 시민을 적으로 인식하는 사고체계를 드러냈다면, 이는 1979년의 군사반란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우기는 극우세력에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이 교재에서는 과거 군사독재의 과오는 기술하지 않고 역사 도발을 자행하는 일본에도 너그럽다. 반면 누가 우리의 적인지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묘사하는데, 여차하면 북한을 향한 총부리가 시민들을 향해 겨누어질 수 있다는 협박처럼 들린다.
교재에서 기술하듯이 우리의 적이 북한 정권, 북한 군대, 그리고 내부의 적이라면 앞 두개의 적은 휴전선 너머에 있다. 멀리 있는 적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군은 슬그머니 시선을 후방으로 돌리며 내부의 적에 대한 의심과 적대감을 키워 간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도 국방부 지정 불온도서 파문, 북한 여성 간첩의 육군 장교 포섭과 기밀누출 사건을 거치면서 ‘종북 세력’이라는 내부의 적에 대한 의심이 거의 병적인 수준으로 확대된 적이 있다. 국군 장병에 대한 사상 검열과 통제가 강화되던 시기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지만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제대로 응징하거나 책임을 추궁하지도 못하고 그저 당하기만 했다.
급기야 북한이 한국 내부 종북세력과 손잡고 혼란을 획책하는 만큼 이에 대응해야 한다며 군 사이버사령부를 인터넷 댓글부대로 동원했다. 이 댓글부대에 이명박 대통령을 찬양하고 야당을 조롱하는 임무를 부여한 군 지도부는 댓글 전쟁에 거창한 ‘제4세대 전쟁’이라는 명칭까지 부여했다. 현대에는 북한이 물리적 침략만이 아니라 종북세력과 연계하여 사회 혼란을 도모하는 비대칭 분란전을 획책한다는 게 새로운 전쟁론의 핵심이다. 5공화국 신군부가 국가안보 체제를 확립한다며 벌인 사회정화 시책과 같은 맥락이다. 안보에 실패한 정권이 국민에게 화풀이하듯이 총구를 돌리며 엉뚱한 전쟁이 벌어지자 시민사회는 사실상 내전 상태로 치달았다. 뒤이어 박근혜 정부는 아예 국방부에 정신전력원을 창설하여 장병의 정신 통제와 교육을 더욱 강화하였다. 급기야 기무사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계엄문건을 다듬으며 5공식 질서의 부활을 도모하는 위험한 영역에까지 진입했다.
사회 분열을 정치의 무기로 삼고자 하는 극우세력은 정작 안보에 실패하면서 내부 통제와 검열을 강화하려는 속성을 드러낸다. 이런 행태의 이면에는 군은 특수한 존재이며 군인의 정신세계는 국민과 달라야 한다는 일종의 자기특수화가 있고, 군이 국가를 책임진다는 과도한 역할 확장과 선민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국민정신과 군인의 정신은 달라야 한다는 아주 위험한 인식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군부의 신직업주의라 할 것인데, 이런 사고체계가 미얀마에서는 군사쿠데타로 이어졌다.
이번 정신전력교육 교재가 문제 되자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이 “건전한 진보는 위협이 아니다”라고 해명한 모양이다. 어떤 진보가 건전하고 불온한 것인지를 국방부가 나서서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 누가 그런 권한을 국방부에 부여했는가. 이들이 육군사관학교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고, 해병대원 사망 수사에 외압을 행사할 때부터 싹수가 노란 정치군인들의 행태는 이미 세상에 다 드러났다. 국방의 테두리를 넘어 정치의 영역에 한발을 딛는 바로 그런 정치군인들이 안보에 실패하는 핵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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