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5일에 멈춘 시계…“오송 참사 160일 달라진 게 없다”
“그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사람도, 허망하게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도 정신과 치료와 약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 힘들어 일을 접은 사람, 일상 자체가 무너진 사람이 여럿입니다.”
이경구(49)씨에게 지난 5개월은 ‘눈 뜨면 고통이요 눈 감으면 악몽’인 나날이었다. ‘그 일’이 터졌을 때 이씨는 747번 빨간색 급행버스를 타고 간 스물네살 조카를 찾으러 ‘그곳’으로 달려갔다. 친구와 여행을 다녀온다며 집을 나선 조카는 그날 오후 14명의 희생자와 함께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이씨는 “버스에 물이 찬다고 불안해하던 조카의 통화 영상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그는 사건 뒤 오송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를 맡았다.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그날이죠. 남들에게는 이제 잊혀가는 현실이 한스럽네요. 그래도 버텨야지요. 살아남은 자의 몫이 있으니까요.”
ㄱ씨의 일상도 7월15일 ‘그날’에 멈춰 서 버렸다. 그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 생존자 16명 중 한명이다. 그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활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그날 그 흙탕물, 그 상황이 자꾸 생각나고 머리가 너무 아파요. 약 세 봉지 털어 넣고 하루하루 견디는 게 힘겹죠. 참사 이후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뭐 하나 이뤄진 게 없어 그날을 털어낼 수 없어요.”
지난 20일 오후 찾아간 508번 지방도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 현장. 여전히 바리케이드와 철제 펜스가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를 막고 있었다. 김기봉 충청북도 도로관리사업소 도로관리과장은 “정밀안전진단을 하고 배수·배전 등 결함을 보완해 내년 6월께 재개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하차도 주변은 복구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 10월26일 미호강 미호천교가 임시 개통됐지만 주변에선 아직도 중장비·화물차 굉음이 끊이지 않는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미호천교 공사 편의 때문에 2021년부터 임시 제방을 쌓았다 허물기를 반복했는데, 참사 당일 아침 현장 인부 6명이 허겁지겁 쌓은 ‘모래성 제방’이 무너지면서 강물 6만톤이 주변 지하차도로 쏟아져 들어가 그곳을 지나던 버스 등 차량 17대와 시민을 그대로 삼켰다.
참사의 원인으로 꼽힌 임시 제방도 새로 쌓고 있었다. 붕괴 당시 임시 제방은 상부 폭이 5m, 하부 폭이 18.5m 정도였지만, 새로 쌓는 임시 제방은 상부 폭만 30m가 넘었다. 지하차도 바로 옆에선 높이 2m 남짓한 방호·방수벽을 쌓는 일이 한창이었는데, 시공은 당시 부실공사 의혹이 일었던 ㄱ건설이 그대로 맡고 있었다. 홍완기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광역도로과 주무관은 “임시 제방은 내년 1월 말 준공 예정이다. 이 제방으로 내년 여름을 보낸 뒤 금강유역환경청이 진행하는 미호강 정비 공사 때 본제방을 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호강 병목구간 강폭을 350m에서 610m로 넓히고, 퇴적토를 준설하는 미호강 강외지구 하천정비사업은 내년 2월에 착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재난 상황을 전파하고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는 충청북도와 청주시의 재난상황실 근무 인력은 참사 당시 그대로였다. 충북의 나머지 시·군 10곳은 지금도 야간 근무자가 없다. 김종희 충청북도 재난상황팀장은 “행정안전부에서 상황실 근무 인력·장비를 보완하고, 시·군에도 최소 1명 이상 24시간 상황 유지를 권고했지만 인력난 때문에 아직 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지하차도 관리 시스템도 완비되지 않았다. 충청북도가 관리하는 궁평·묵방·학소·오창·마송 등 지하차도의 진입 차단 시설은 내년 3월에나 설치된다. 충청북도는 사고 직후 ‘안전 충북 2030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재난 안전 모범도시 오송’ 조성을 약속했지만 관련 예산이 깎이면서 빈말이 되어버렸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시민단체와 함께 오송 참사 협의회·대책위를 꾸리고 160일 넘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김영환 충북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 등이 오송 참사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검찰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했지만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송 참사 수사본부를 차린 검찰은 최근 감리단장과 현장소장을 구속기소했다. <끝>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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