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eople] 안영환 락고재 대표 "한옥은 한류 담는 큰 그릇이죠"
(서울=연합뉴스) 김지선 기자 = "한옥은 한류를 담는 큰 그릇입니다. 우리 호텔에서 K컬처의 뿌리를 느껴보고 가셨으면 합니다."
내년 봄 '필생의 역작'을 공개하기에 앞서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라는 안영환(66) ㈜락고재 대표를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에서 만났다.
그에게 필생의 역작이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 문을 여는 '락고재(樂古齋) 하회 한옥 호텔 & 리조트'를 말한다. 현재는 임시 개방된 상태이며 내년 4월 정식 오픈할 예정이다.
'락고재 하회'는 숙소 20여채 모두 각기 모양이 다른데, 부용정 앞 연못까지 재현하는 등 몇몇은 창덕궁 전각을 그대로 본떴다.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을 흉내 낸 연경당, 낙선재처럼 당시 상류층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양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건물과 건물을 회랑(복도)으로 연결하는 대신 '독채형'으로 거리를 두고 지어 한옥 고유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주변과도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호텔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문인석을 비롯해 객실 안팎을 장식한 고미술품은 그가 오랜 시간 손수 수집한 문화재. 호텔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박물관에 온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외형은 전통 한옥을 계승하되 내부는 숙박객에게 편리하도록 구성했다. 아궁이로 불을 때는 거실에선 '온돌문화'를 체험하며 고구마를 구워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자체 개발한 난방 장치를 도입, 겨울철에도 누마루에 앉아 경치를 만끽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로 평가되는 병산서원 만대루를 모델로 했다는 것이 안 대표의 귀띔이다.
'하드웨어'만큼이나 '소프트웨어'에도 신경 썼다.
헛제삿밥, 간고등어, 안동한우, 안동소주 등 이 지역 특산물로 만들고 지역 스토리를 담아낸 로컬푸드가 먹거리의 기본. 투숙객들이 텃밭에서 직접 따온 유기농 채소로 샐러드를 버무려 대접하고, 사상체질 진단을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식단을 제공하는 등 건강에 방점을 찍었다.
'유교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하회마을의 특징을 반영한 서비스도 시행된다. 호텔 측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제사상에 절을 하며 조상을 기릴 수 있도록 별도의 공간을 마련한 것. 안 대표는 "이제 주부들이 제삿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될 것"이라며 웃었다.
"지방세를 안동에 내고 싶어서" 일찌감치 주소지를 옮겨온 안 대표의 안동 사랑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안 대표와 한옥의 인연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다 귀국해 부동산업을 가업으로 물려받은 그는 지난 2003년 종로구 가회동 옛 진단학회 한옥을 인수해 국내 최초 한옥 호텔인 '락고재 서울 본관'을 개관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고택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화장실, 추위 등 불편함을 호소하는 일이 잦아 아쉬움을 느끼던 차였다. 이후 하회마을에 초가 형태 한옥 호텔, 북촌 한옥 마을에는 '락고재 북촌 빈관', '락고재 컬쳐라운지 애가헌'을 연달아 열었다.
"한옥에서 도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나머지 70%는 건축주에게 달려있다"는 그는 머릿속 구상처럼 그림이 나오지 않아 이미 시공이 끝난 한옥을 다시 허무는 등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수업료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한옥에 모듈화를 적용하고 지하공간을 활용하는 등 나름의 노하우도 축적했다.
락고재 부설 목공학교를 설립, 대목장, 소목장 등 한옥을 짓는 목수를 교육하고 실제 공사장에서 실습 기회를 주며 한옥 대중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한옥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스러움.
규모로 상대를 압도하는 중국, 디테일로 승부하는 일본과 비교해 일견 시각적으로 뒤처져 보이지만, '풍경을 잠시 빌려온다'는 뜻의 '차경'(借景)으로 대표되는 '풍류'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설명이다
안 대표는 "한옥에 머무는 각국 유명 건축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지루하거나 피곤하지 않다고 엄지를 치켜세운다"며 "가식적, 인위적인 것을 뛰어넘어 자연과 하나 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경지"라고 소개했다.
또 "유럽의 고성처럼 한옥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후손들이 잘 활용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기와색부터 돌 크기, 소나무 위치까지 어느 하나 자신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기에 '한옥 설치미술가'라 불리고 싶다는 안 대표.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포부 하나로 평생 번 돈을 쏟아부은 그의 다음 행보는 해외 유수 박물관 내 한국관에 실내 한옥을 기증하는 것이다. 선비가 거처하는 사랑방 서탁 위에 문방사우가 놓여야 그 멋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sunny1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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