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중대재해처벌법 손질법
경영계는 해당 기업의 94%가 준비가 안 됐다며 유예를 요구하고, 노동계는 국민 71%가 원한다며 예정대로 시행을 주장한다. 관건은 처벌법의 재해 예방 효과다. 그렇다면 중처법 덕분에 우리는 더 안전해졌을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9월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는 449건, 459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4건, 51명 감소했다. 50인 이상에서는 사망자가 10명 줄었으나 사고는 8건 증가했다. 오히려 법 적용이 유예된 50인 미만에서 더 많이 줄었다. 사망 41명, 사고 42건이 각각 감소했다.
근로복지공단의 보상 승인을 기준으로 한 ‘산업재해 사망사고’도 비슷한 양상이다. 올해 1~9월 50인 이상에선 불과 3명 감소에 그쳤다. 50인 미만에서 39명이 줄었는데 법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에서 51명이나 감소했다.
처벌이 약하고 사건 처리가 더디다는 비판이 있지만, 이는 의지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 불이행과 중대재해 사이에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대재해 감소가 미미한 것은 중처법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중처법은 최고경영자에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과하고, 그 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경우 처벌한다. 그런데 모델로 삼은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은 법인을 처벌하는 반면, 우리는 최고경영자 개인도 함께 처벌한다. 사법 리스크에 노출된 최고경영자는 안전기관보다 로펌을 먼저 찾고, 중대재해는 줄지 않는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
최고경영자가 안전담당자 뒤로 숨지 않고 안전경영을 강화하게 하려면 처벌은 법인을 대상으로 하되, 벌금이 예방 비용보다 적은 구조를 바꿔야 한다. 안전에 실패한 경영자는 주주와 시장을 통해 문책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산업안전 규제는 발상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작년 말 기준 산업안전보건법상 규제는 760여건, 고시 등을 더하면 수천건에 달하지만, 비용 대비 산재 예방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현장에선 안전활동보다 규제에 맞춰 증빙서류 만들기가 우선이다. 실질보다 형식이 앞서니 안전진단과 감독 뒤에도 재해가 반복된다.
영국도 1970년대에는 연간 산재사망사고자가 1000여명, 사고사망만인율이 0.4에 달했다. 하지만 1974년 독립위원회의 ‘로벤스 보고서’를 기초로 안전·보건 시스템을 일대 혁신해 사망만인율을 10분의 1 이하로 줄이고 오늘날 가장 안전한 나라가 됐다. 개혁의 핵심은 ‘지시적 규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목표만 설정하고 사업주가 다양한 위험성에 맞춰 합리적으로 실행가능한 위험관리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는 ‘목표기반 규제’로 대체하는 것이다.
안전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도 기술적·지시적 규제에서 벗어나 목표기반 자율규제로 갈 것을 주문한다. ‘위험성 평가’를 재해 예방의 일반원리로 정립하고 유해위험방지계획서, 공정안전보고서, 안전보건개선계획서 등 중복규제는 폐지할 필요가 있다. 비슷한 의무를 이행하면 다른 의무를 면제하는 ‘동등성 인정제도’를 확대하고, 감독은 적발 위주에서 적절하고 충분한 조치가 이뤄졌는지를 평가하는 ‘시스템 감독’으로 전환해야 한다.
안전기관들도 규제에 안주하지 말고 안전경영의 동반자로 거듭나야 한다. 노사정이 안전이라는 공동목적을 위한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협력할 때 일터는 안전해지고 행복지수도 올라갈 것이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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