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를 ‘분쟁지’ 표현한 국방부… ‘교재 전량 회수’ 뒤늦은 수습

구현모 2023. 12. 2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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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장병 정신교육 교재에 기재
尹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 질책
‘영토분쟁 없다’ 정부 입장과 배치
국방부, 당초 “국제정세 기술” 해명
尹 질타에 “신속 조치” 입장 선회
한반도 지도 독도 표기 전혀 없어
집필진 대부분 군인… 학자 전무
군사독재 정부 등 과오도 축소돼
국방부가 새로 배포한 장병 정신교육 교재에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이란 취지로 표기했다가 논란이 확산하자 전량 회수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독도는 우리 고유 영토이므로 분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정부가 일관되게 지켜 온 공식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방부를 강하게 질책한 가운데 국방부는 28일 교재를 회수함은 물론 집필 과정의 문제들을 감사 조치하겠다고 뒤늦게 수습했다. 야당에선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파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28일 서울 영등포구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을 찾은 시민들이 독도 축소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 26일 공개된 장병 정신전력 교육 기본교재는 198쪽 상단에 “한반도 주변은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여러 강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며 “이들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해외로 투사하거나,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쿠릴열도, 독도 문제 등 영토분쟁도 진행 중에 있어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국의 공식 입장과 배치된다.

독도가 영토분쟁 지역이라는 표현은 그간 일본 정부에서 사용해왔다.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국제사회에 인식시키고 그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으로 가져가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이 확산했으나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주어를 다시 읽어보라.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니다”라며 “국제정세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교재에 11차례 나오는 한반도 지도에 독도가 표시되지 않은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은 “(교재 속 지도들이) 울릉도만 표시하고 독도는 표기하지 않는 등 우리나라 역사에 독도를 지워버리며 군의 그릇된 역사관을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회수되는 장병 정신교육 교재 국방부가 최근 펴낸 장병 정신교육 교재에 우리 독도가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쿠릴열도 등과 더불어 “영토분쟁이 진행 중”인 지역으로 표기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국방부를 강하게 질책한 가운데 국방부는 “전량 회수하고 집필 과정의 문제점을 감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그러자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방부를 강하게 질책했다.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국방부가 최근 발간한 장병 정신교육 자료에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인 것처럼 기술한 것을 보고받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크게 질책하고 즉각 시정 등 엄중히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여야도 한목소리로 국방부를 질타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독도는 명백한, 그냥 대한민국 영토”라며 “즉각 바로잡아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야권은 공세 수위를 한층 더 높였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충격과 분노를 참을 수 없다”며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재를 만든 윤석열 정권의 국가관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을 향해 “신원식 국방부 장관부터 당장 파면하라”고 촉구했다.

국방부는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에야 입장문을 통해 “독도와 관련한 중요한 표현상의 문제점이 식별됐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이미 배포된 교재의 전량 회수에 착수함과 동시에 “집필 과정에서 있었던 문제점들은 감사 등을 통해 신속히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빠른 시일 내에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교재를 보완해서 장병들이 올바르고 확고한 정신무장을 갖추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 연합뉴스
전군에 배포되는 정신전력 교육 기본교재는 5년마다 개편되며 장병 정신교육 때 활용된다. 독도 표기 문제처럼 민감한 오류를 걸러내지 못한 것을 두고 집필진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던 이전 교재와 달리 이번 교재 집필진은 10명 중 대부분이 현역 군인이다. 공무원과 군무원은 포함됐지만 학자는 없었다.

교재가 공개된 이후 편향성 논란도 이어졌다. 보수 정부의 정책 기조나 역사관을 일방적으로 기술했다는 평가다. 특히 윤석열정부가 재평가 작업에 나선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한반도의 공산화를 저지한 혜안의 지도자’라고 표현했을 뿐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 4·19 혁명 등 그의 과오는 아예 기술하지 않았다. 특히 군사독재 및 권위주의 정부 시절 저지른 과오도 이전 교재보다 대폭 축소했다. 교재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대해 “북한이 일으킨 6·25전쟁과 계속되는 군사적 도발로 반공 의식이 강화되었고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과오도 발생했다”는 표현으로 축약해 설명했다.

구현모·곽은산·김병관·김현우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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