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분쟁지역화’는 일본 노림수…한국 정부가 동조한 셈
일 함정 경유해도 ‘항의’ 폭 축소…야당선 신원식 파면 요구
국방부가 한글로 펴낸 공식 자료에서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이라고 표기한 것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맞서는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을 좁힐 우려가 있어 그 파장을 가늠하기 힘들다.
독도를 국제 분쟁 지역으로 만들어 국제사회에서 영유권을 다투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전략인데 한국 정부가 스스로 여기에 동조하는 모양새가 돼버린 것이다. 국방부가 영토주권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방부가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서 “댜오위다오, 쿠릴열도, 독도 문제 등 영토분쟁도 진행 중”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이를 두고 “정부가 일본에 맞설 지렛대를 하나 잃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강조하면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선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독도 문제와 같은 예민한 현안은 최대한 부각하지 않으려고 한 정부가 정작 양국 간 현안이 남아 있다는 현실을 지나치게 경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기정 서울대 교수는 통화에서 “한국 정부는 영토분쟁이라는 표현을 이제까지 써본 적이 없다. 그 단어가 국제사회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라며 “독도를 영토분쟁화하려는 게 일본의 목적인데 우리가 이것을 받아주는 꼴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이날 교재를 전량 회수하기로 했지만, 일본 정부가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독도 영토분쟁을 합리화할 자료로 이번 교재 원본을 활용할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남 교수는 “자칫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포기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맞설 지렛대를 하나 잃은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정권을 불문하고 독도가 실효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한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분쟁 대상 지역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에 반해 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 영유권 분쟁으로 만들어 국제사법재판소(ICJ)와 같은 국제사법 영역으로 끌고 가려 시도했다. 국제사법 체계는 사실상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한국과 다퉈볼 만하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반면 일본은 자신들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고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센카쿠열도에 대해서는 “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국방부가 직접 펴낸 교재인 만큼 이번 사태가 군사적 파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독도 주변 수역에서 한·미·일 연합훈련이 진행되거나 한반도 유사시 일본 함정이 독도를 경유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항의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야당에서는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미쳐가는 듯하다. 대체 어느 나라 국방부인가”라며 “당장 국방부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제2의 이완용인 신원식 장관을 파면하고 윗선 보고 여부 등 수사를 강력 촉구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국제법 전문가는 통화에서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이번 일은 국방부가 너무나 잘못한 것”이라고 했다. 다른 전문가는 “이번 정부 들어 일본 주류 정치권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일도 그중 하나라는 느낌이 든다. 탄핵감”이라고 말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SNS에서 “국방부는 대국민 사과를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반드시 주의해야만 할 것”이라고 했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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