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장이 만든 ‘육아 전문 도시’, 나가레야마의 진화[글로벌현장]
교육·고용·의료에도 공들여 ‘평생 살기 좋은 도시’로
저출산·고령화와 인구감소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한 개인이 되돌릴 수 있을까. 일본 지바현 나가레야마시(市)는 한 개인이 지역의 인구구조를 바꿔놓은 사례다. 도쿄에서 40분 떨어진 인구 20만 명의 이 도시는 일본에서 ‘육아 전문 도시’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20년 가까이 브랜드화에 공을 들인 덕분이다.
육아 전문 도시 나가레야마 탄생기는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 도쿄 아키하바라와 이바라키현 쓰쿠바시를 잇는 수도권 신도시 철도 쓰쿠바익스프레스 건설 계획이 발표됐다. 마을은 철도가 깔리면 사람이 몰리고 땅값도 오를 것이란 기대에 부풀었다.
1988년부터 나가레야마로 이주한 이자키 요시하루의 생각은 달랐다. 이자키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주립대에서 인구환경연구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21년간 미국과 일본에서 도시계획자(Urban Planner)로 활동했다. 전문가인 그가 보기에 철도 건설은 나가레야마에 대위기였다.
일본 대도시 지역의 택지개발 및 철도정비의 일체적 추진에 관한 특별조치법(택철법)은 신설 철도 주변의 택지개발 사업을 의무화했다. 2005년 8월 쓰쿠바익스프레스 개통 전까지 개발할 면적은 3270ha였다. 일본 역사상 최대 사업이었던 다마뉴타운 사업(1965년 도쿄도 서남부 지역의 균형 개발을 위해 2884ha 규모로 시행된 신도시 조성사업)보다 20% 컸다.
나가레야마시가 담당하는 지역은 627ha로 시 면적의 18%에 달했다. 다마뉴타운은 일본 고도성장기의 신도시 조성사업을 통해 탄생했다. 반면 나가레야마는 일본 인구가 처음으로 감소한 2005년 역대 최대 규모의 신도시 조성사업을 치러야 했다.
철도가 깔리면 사람이 몰리고 땅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도 쓰쿠바, 가시와 같은 지명도 있는 동네의 얘기였다. 나가레야마는 철도 예정지 주변 지자체 가운데 인지도가 가장 낮은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개발 규모는 제일 큰데 인지도는 가장 낮은 이 지역 토지는 안 팔릴 가능성이 높았다.
팔아야 할 땅은 많은데 인지도가 가장 낮은 나가레야마는 이대로라면 594억 엔(약 5384억원)의 부채를 떠안아 재정 파탄에 빠질 게 확실했다. 2003년 나가레야마시의 연간 세수는 190억 엔이었다. 인구 20만의 번듯한 도시로 성장한 2023년의 세수가 343억 엔이다.
이자키가 시장과 시의회를 찾아다니며 상황을 설명했지만 그들은 ‘철도만 깔리면 만사형통’이란 식으로 대응했다. 그는 시장과 시의회 의원을 설득하는 대신 “차라리 내가 시장을 한다”로 전략을 바꿨다. 이자키는 2003년 시장 선거에서 당선된 이래 올해까지 20년째(6연임) 나가레야마 시장을 맡고 있다.
2004년 15만 명 안팎이었던 시 인구는 2023년 약 21만 명으로 40% 늘었다. 인구 증가율이 2020년까지 6년 연속 전국 792개 시 가운데 1위였다. 세수는 343억 엔으로 80% 늘었다. 30~40대 육아 세대가 크게 늘면서 일본 도시 가운데 0~9세 인구가 75세 이상 인구보다 많은 단 두 곳 가운데 하나가 됐다. 나머지 한 곳은 사이타마현 도다시다.
이자키 시장은 “10년 전만 해도 나가레야마는 이주를 검토하는 육아 세대가 주변 여러 지역을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찾는 지역이었다”고 회고했다. 올해 조사에서는 ‘처음부터 나가레야마만 검토했다’는 비율이 70%에 달했다.
이런 변화가 어떻게 가능해졌을까. 지난 11월 27일 일본외신기자센터(FPCJ)의 협력을 얻어 이자키 시장을 인터뷰했다. 이자키의 나가레야마는 주변 지방자치단체보다 최대한 빨리, 되도록 비싼 값에 땅을 판다는 전략을 세웠다.
SWOT 분석(강점·약점·기회·위협 등 네 가지 요인을 분석하는 경영기법)을 통해 나가레야마가 선택한 길은 ‘육아 환경에 특화한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숲의 마을’로 브랜드화하는 것이었다. 주 타깃은 30~40대 맞벌이 육아세대로 잡았다.
맞벌이 육아세대를 잡기 위한 첫 번째 정책은 어린이집을 대폭 늘리는 것이었다. 어린이집이 없으면 맞벌이 부부가 나가레야마로 이사를 오지 않고, 그러면 집을 사거나 임대하지도 않는다고 판단했다. 시는 2010년 17곳이었던 어린이집을 104곳으로 늘렸다. 또 200세대 이상의 아파트에 대해 어린이집 설치를 의무화했다.
킬러 콘텐츠는 도쿄를 잇는 지하철역 바로 옆에 설치한 ‘송영보육스테이션’이었다. 송영보육스테이션은 마중 보육 서비스다. 인구의 40%가 도쿄로 출퇴근하는 맞벌이라는 점에서 착안했다. 출퇴근에 쫓기는 부모들이 이곳까지만 아이를 데려오면 104개에 달하는 시 전체 어린이집으로 아이들을 바래다주고 데리고 온다. 이용료는 하루 100엔(약 905원), 한 달 2000엔(약 1만8115원)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해서 저녁 끼니를 걱정하는 부모를 위해 저녁밥도 400엔에 제공한다. 야근하는 부모를 위해 밤 9시까지 연장 보육도 한다. 도쿄의 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3살 된 아들 아오이를 키우는 규노 하루카(31)도 송영보육스테이션에 꽂혀서 도쿄에서 나가레야마시로 이주했다. 규노는 “정말 큰 도움이 됐으며 앞으로도 제도가 계속 유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가레야마를 본떠 일본 전역의 지자체 14곳이 송영 보육 스테이션을 운영한다. 하지만 나가레야마처럼 시의 어린이집 104곳 전체를 대상으로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곳은 없다. 시내 전 지역을 자동차로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콤팩트한 도시 규모도 나가레야마시의 성공을 도왔다.
최고의 육아환경으로 30~40대 육아세대를 끌어들인 나가레야마가 다음으로 공을 들이는 분야는 교육, 고용, 의료다.
나가레야마는 2008년부터 초등학교 5~6년생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실시했다. 일본의 초등학교에서 영어교육이 의무화한 지 10년 전부터다. 2020년 영어검증능력 3급 상당의 학력을 갖춘 일본의 중학생은 44%였다. 반면 나가레야마시는 62.9%에 달한다.
2021년 일본 정부가 목표를 50%로 높였을 때 나가레야마에서 영어 3급 수준을 갖춘 중학생 비율은 69.9%에 달했다. 나가레야마는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에서 학군이 좋은 지역으로 브랜드를 강화하고 있다.
대형 물류센터 같은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도 유치했다. 단순히 육아가 쉬운 환경이 아니라 아이 옆에서 육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재택근무 보급까지 보태지면서 최근 5년간 나가레야마로 이주한 사람 가운데 도쿄로 출퇴근하는 사람보다 시내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 늘었다.
종합병원을 유치하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한 곳을 유치했고, 내년 여름을 목표로 또 한 곳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좋은 학군 만들기, 고용, 의료서비스 확충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육아를 위해 나가레야마시로 이주해 온 주민들이 아이가 자란 뒤에도 도쿄로 빠져나가지 않고 평생 살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우선 ‘좋은 학군’을 만들어서 아이가 수험생이 돼도 나가레야마에 계속 살게 만든다. 또 도쿄로 출퇴근하는 사람보다 나가레야마에서 일하는 사람을 늘림으로써 돈이 지역 내에서 돌게 한다. 종합병원을 유치해 노후에도 안심하고 나가레야마에 거주할 수 있게 만든다.
지난해 시가 실시한 조사에서 ‘나가레야마시는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응답이 89.6%였다.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응답자 비율은 91.2%였다.
지바 나가레야마=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