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일흔에 첫 소설, 여든둘에 페미나상 받은 ‘환희의 상실’
20대 시작한 야생 삶 토대
노화해 무너지는 인간종과
소멸하는 자연생명 중첩해
인간언어 초월한 시적 소설
내 식탁 위의 개
클로디 윈징게르 지음, 김미정 옮김 l 민음사 l 1만8000원
프랑스 작가 클로디 윈징게르(83)가 국내에 소개된 적은 없다. ‘내 식탁 위의 개’는 그가 나이 여든둘에 발표한 소설인데 형식과 내용 또한 경험해본 적이 드물 듯하다. ‘아름답다’는 독후감만 올해 몇 차례의 경험과 겹친다면 겹칠 터. 따라서 2023년은 클로디 윈징게르를 만난 해라고 마지막줄 기록되어도 과장이 없겠다.
스물다섯 되던 1960년 알자스 보주산맥 자락에 배우자와 정착해 양 목축, 작가, 조형예술가로 살아오던 윈징게르가 소설가 직함을 추가한 건 2010년이다. 일흔살 여성의 소설 데뷔작은 20세기초 자유분방했던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자전 소설 ‘그녀들은 희망을 안고 살아갔다’이다. “공립 초등학교 교사의 딸이자 손녀였던 나의 엄마, 사전을 먹고 자란 딸, 그러므로 가부장제가 배어 있는 프랑스어의 딸, 할머니를 통해 마을의 꽃과 동물에 관한 다양한 언어를 습득하고 정원과 경계와 국경들을 접촉하며 살았던 나의 엄마는 그러므로 중심과 변방을 내게 물려준 셈이다.” 이런 대목을 담아, 이런 모계적 ‘기후환경’ 속에서 자란 작가가 쓴 ‘내 식탁 위의 개’(2022)는 프랑스 양대 문학상인 페미나상을 받는다.
이 작품도 윈징게르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나’가 주인공이다. 정정하자. 작중 소설가인 ‘나’는 숱한 주인공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언어를 탐청하여 전율하고 대변하는 자다. 네발 달린 짐승, 새, 나무, 풀, 이끼에서 진드기까지 나를 품고 지켜보는 세계의 모든 생명들. 독성을 머금어 꽃술을 지키고 가을 그토록 아름다운 자태를 피워내는 백합과의 콜키쿰은 ‘나’가 직관하는 또 다른 여자다. 이 소설이 드문 갈래라면, 바로 들려오는 이들의 언어가 지금껏 드물었던 것이다.
스물다섯에 관습과 합리주의로부터 도주해 야생으로 들어갔던 소피(‘나’)와 그리그 위징가 부부는 이제 팔십대가 되었다. 유치원 때 만났던 그들은 여전히 서로가 서로에게 짓궂은 연인이다. “자본주의가 내팽개친 충적세의 한 조각”에 매료되어 왔던 이들, 늪가에서 두꺼비 울 때 사랑을 나누곤 했다. “저 박동하는 질의 음악소리가 안 들리는 거야?”(소피) “(그런 얘기) 그만하지 않으면 덮쳐 버릴 거야.”(그리그)
하지만 육신은 허물어진다. 마음속 아이 하나를 품고 사는 “이상한 노인들”일망정 일상 시전되는 “몸의 패배”는 도리 없고 참혹하다. 노닐던 산 정상과 숲들, 새벽 커다란 수사슴들을 좇거나 늑대와 마주치길 바라는 마음도, 사냥꾼들과 대거리하는 것도 그만둬야 한다.
‘내 식탁 위의 개’는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풍과 서정의 흐름으로 읽혀야 한다. 깊은 적요가 기-결이라면 격렬한 진동이 승-전쯤일까, 아니면 기승 대 전결? 늙어 무너져가는 나와 그리그의 유머는 격조 있고, 행동과 양식엔 군살이 없다. “나는 끊임없이 모든 것을 잃어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잃음을 축적해 부를 과시하듯 내보였다.” “나는 늙어 가는 일에 익숙해졌다.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팔의 피부에 주름이 더 지도록 한 다음, 물을 갈구하는 자잘한 주름들을 발견하며 일종의 쾌감을 느꼈다.” 이것이 가능한 지경이라면, 광포한 산업자본주의는 물론이요, 변방으로 내몰린 생명들과 활자, 서점과 같이 소멸하고 말 것들의 세태나 비관 그 어떤 것에도 부부가 굴복할 리 없다.
이 지점, 두 가지가 더 부연될 만하다. 누군가는 몸통으로 읽을 첫번째. 몸의 패배를 실감하던 어느 날 부부를 찾아온 자 있으니 양치기로 길들여진 브리아드 종의 암캐다. 학대와 수간의 상처를 질질 끌고서 기진맥진 도망온 자. 남편의 일이었을 뿐 한번도 개를 키워본 적 없던 나는 운명처럼 그에게 ‘예스’라 이름하고 속삭인다. “내가 여기 있어.” 내게 몸을 맡긴 그에게 “내가 여기 있단다.” 헐떡이는 그에게 계속, 계속해서 “내가 여기 있단다”…. 이윽고 도주한 개를 키우겠다는 노부부를 뒤로하고 예스는 냄새만 남긴 채 산야로 사라져버린다. 예스의 반전(?)과 또 한번의 반전까지가 이 소설의 실제 시간이다. 이를 통해 “예스”는 이종 간의 가장 원시적이고 궁극적인 대화법처럼 들린다. 작가가 구사하는 말하자면 ‘전지적 짐승 시점’도 이젠 교과서에 실려야 할 것 같다.
두번째, 윈징게르로선 이미 ‘소멸’한 어머니를 거듭 소환하지 않을 수 없었겠다. 선대 여성들의 ‘변방성’을 이어받은 덕분이다. 변방은 추방 정지된 실태가 아니다. 변방에 이르러야 다른 세계와 만난다. 그때 한 세계와 다른 한 세계가 온전해진다. 인간의 몸, 인간의 언어, 고유하다는 인간성 또한 ‘동물성’과 만날 때 확장되어 온전해진다. ‘나’는 숲의 세계를 책처럼 읽어 나가며 말한다. “인간이 우리 종 안에 격리된 존재, 즉 다른 종과 분리된 존재가 아님을. 우리는 그들과 다르긴 하지만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우리가 인간에 속한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지극히 제한된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그보다 훨씬 광대한 존재다.”
소설 제목은 뉴질랜드 작가 재닛 프레임(1924~2004)의 자서전 ‘내 책상 위의 천사’(1980년대 출간, 1990년 영화화)를 오마주한 것이다. 가난한 집 못난 여자아이로 가족사 또한 비극적이었던 재닛을 살린 건 문학(적 글쓰기)이다. 정신병자로 내몰리면서도 내면으로의 탐색을 멈추지 않는다. 침잠은 다른 세계로의 탐험이기도 하다. 재닛 프레임은 생전 출간을 원치 않았던 한 소설(1963년 쓰인 ‘또 다른 여름을 향해’)에서 ‘자신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니며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철새’라고 쓴다. 이 동물성 내지 야생성이 인간에게 어떻게 긴요한지 윈징게르는 ‘목격’한 대로 말한다.
“우리가 잃어버리게 될 것들에 빛을 비추기. 상실을 비추기. 그것이 나의 일이다. 상실의 행렬은 엄청났으며, 무서운 속도로 우리 앞에 당도했으므로. 모든 것이 맹렬한 기세로 쉬지 않고 사라지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번엔 상실이 하얗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 그래, 이거야, 바로 이거! 자, 존재가 지닌 최후의 아름다움을 맛보기를. 노란 꽃을 피운 개쑥갓류, 장미색 반점이 있는 야생 접시꽃 그리고 관모가 자주색인 오볼라리아가 자라나는 초원들. 상실의 기억들을 메모하라. 그것들을 환히 비추어라.”
파멸을 부추기는 산업사회로부터, 자본주의로부터, 인간중심주의로부터 스스로를 추방시켜 온 ‘나’는 이제 소멸하는 것들의 마지막을 전율로써 환대하는 소멸종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여자하기’ ‘짐승하기’ ‘시하기’를 자신의 글쓰기로 표명해왔던 김혜순 시인과 함께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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