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하는 부부가 지은 '부암동 도시 속 시골집'..."창밖을 보면 마음이 쿵, 해요" [집 공간 사람]
귀촌 꿈꿨던 부부가 서울에 지은 주택
"제철 채식 밥상 같은 건강하고 따뜻한 집"
편집자주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서울 광화문을 지나 인왕산 혹은 북악산을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 별천지, 부암동. 도시를 멀리 떠나야 조우할 법한 그윽한 숲으로 둘러싸인 그 동네를 내려다보는 산비탈에 비건 요리연구가 강대웅(41)·이윤서(38) 부부의 집(대지면적 122㎡, 연면적 112㎡)이 있다.
부부는 북쪽을 바라보는 언덕배기의 작은 땅에 집을 지었다. 그런 땅에 집을 짓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시골에 살고 싶은 꿈이 있었거든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 시골행을 계획했어요. 전국으로 발품을 팔아 마음에 드는 집을 겨우 만났는데 계약이 틀어져 자포자기하고 있었죠. 그때 부동산 소개로 우연히 이 땅을 만난 거예요.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자연을 만나다니, 운명이다 싶었죠."
부부는 홀린 듯 땅을 사고 집 짓기를 시작했다. 평생 살 집을 짓겠다는 마음은 매 순간 더욱 어려운 선택을 하게 했다.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모든 과정을 손수 해나가고 싶었던 남편 강씨는 틈날 때마다 건축 서적을 뒤적거리고 집 짓기 워크숍에 참여했다. 건축 허가가 미뤄지며 설계가한 차례 바뀌고 공기는 끝도 없이 길어졌다. 그렇게 3년 넘게 담금질을 거친 후에야 지하 상업공간과 1, 2층 주거공간을 갖춘 주택으로 완성됐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만족감이 컸어요. 부지런히 움직이는 만큼 정직하게 바뀌어가는 집을 지켜보는 게 고단함을 상쇄할 만큼 좋았으니까요."
자연과 계절의 에너지를 담은 집
부부의 집은 건강한 채식 밥상을 닮았다.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절기와 계절의 에너지를 담아내는 비건 요리 같은 집을 짓고 싶었다"는 설명대로다. 디자인에 힘을 빼고 재료의 오라를 최대한 살렸다. 주재료는 나무. 목재로 골조를 세우고 바닥에는 무광 나무 바닥재를 깔았다. 가구는 나무 합판으로 공들여 제작했다. 창문은 크게, 많이 내서 바깥 풍경을 풍부하게 들이는 대신 삼중창을 쓰고 벽을 두껍게 만들어 단열에 신경을 썼다. 테라스, 옥상, 천창 같은 요소는 하자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처음부터 계획에 넣지 않았다. 아내 이씨는 "딱 우리가 만든 요리 같은 집"이라며 웃었다.
부부가 24시간 붙어 지내며 요리 수업과 케이터링 등을 생업으로 이어가는지라 부엌과 다이닝룸이 자연스레 전망 좋은 2층을 차지했다. 박공지붕으로 탁 트인 천장, 정갈한 부엌, 이 모든 풍경을 한 세트로 만드는 나무 가구와 바닥, 정성껏 고른 소품이 모여 빈티지하면서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컬러와 디자인을 자제하면서 나무로 통일감을 준 덕분에 부부의 취향과 감각이 한층 돋보인다.
큰 창문은 근사함을 더하는 요소. 멀리 보이는 북한산과 집 앞 키 큰 나무들의 풍경이 사시사철 작품처럼 걸려 있다. 북향이라 은은한 빛이 들어 종일 환하고 덕분에 공간도 실제보다 훨씬 넓게 보인다. "시야를 막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큰 창을 내려고 했어요. 완공 직전에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이 창을 통해 밖을 보는데 마음이 쿵, 했어요. 이런 풍경이 있는 집이라면 오래오래 살 수 있겠다 싶었지요. (언덕을 올라) 힘들게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깜짝 선물이 될 거라 생각했죠."
부부는 집의 얼굴 같은 창 앞에 테이블을 놓고 '뿌리온더플레이트'라 이름 지은 비건 요리 수업을 진행한다. 일주일에 네 차례 진행하는 수업은 늘 만석이라고. 은은하게 풍겨오는 나무 향과 아름다운 풍경이 인기 비결임은 말할 것도 없다.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다
2층이 살림과 일이 맞물리는 열린 공간이라면 1층은 부부의 생활이 집약된 사적인 공간이다. 침실과 서재가 나란히 있고, 이 둘을 잇는 복도에 욕실, 샤워실, 고양이 식당이 각각 독립된 부스로 들어섰다. 입구에는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시선을 완전히 차단했다.
단순해 보이는 구조이지만 분명한 신념이 담겼다. 누군가가 지은 집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가족이 쉼과 위안을 얻기에 필요한 딱 그만큼 공간을 갖겠다는 것. 반려묘들도 이 공간을 벗어나지 않는단다. "이사 오면서 짐을 많이 줄였어요. 두 사람과 고양이 두 마리에게 딱 필요한 것만 놓고 살고 싶었거든요. 침실은 오롯이 잠을 자는 공간으로, 서재는 나에게 집중하는 공간으로 쓰기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아요."
지하에 마련한 다실은 덤으로 얻은 공간이다. 집을 짓는 동안 건축법이 바뀌면서 주택의 지하를 상업 공간으로 허가받았다. 임대료 걱정 없이 부부가 하는 활동에 공간을 쓸 수 있게 된 것. "일단 다실로 꾸며 예약제로 다회를 열고 있는데 앞으로 더 다양한 상상을 해봐야죠.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쓰는 작업도 하고 싶어요. 비어있을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아요. 일과 휴식을 함께하는 작지만 밀도 있는 집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렇게 됐네요."
도시에서 이룬 귀촌의 꿈
도시의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은 집에서 산 지 반년. 부부는 2층에서 1층, 다시 지하로 물 흐르듯 움직이며 바깥 세계와 다른 자신들만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며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사람들을 모아 요리 수업을 하고, 저녁이 되면 부부 둘만 남아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
한때 귀촌을 꿈꾸던 이들은 이 집에 살면서 도시의 진면목을 발견했다. 정확히는, 도시에서 누리는 망중한의 매력에 푹 빠졌다. "시골을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도시에서 누리는 것들에 미련이 많더라고요. 몇 걸음 나서면 문명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고, 문을 닫으면 완전히 자연에 머물 수 있는 곳에 집을 지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도심과 가까우니 수강생들이 찾아오기도 쉽고요. 집을 짓고 살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더 또렷하게 알게 됐어요."
글·사진=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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