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야 가자”는 캐릭터일 뿐, 캔버스 앞에서 진짜 나를 드러냈다

평택/신정선 기자 2023. 12. 2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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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개인전 여는 배우 박신양
지난 22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엠엠아트센터에서 만난 배우 박신양. 10여 년간 그린 100여 점을 선보이는 첫 개인전을 내년 4월까지 연다./ 장련성 기자

2년 전 경북 안동대 미술학과 석사 과정에 50대 중반 지원자가 합격했다. 지원자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수험표는 금세 화제가 됐다. 주인공이 배우 박신양(55)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학구열은 한발 더 나아갔다. 지난해에는 서강대 신학대학원 철학과에 들어갔다. “그림을 파고들다 보니 아래 깔린 철학이 궁금해졌거든요. 철학 공부, 너무 재밌어요.” 지난 22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엠엠아트센터에서 만난 박신양은 “대학원을 휴학하고 전시에 몰두하고 있다”며 “관람객을 만날 생각에 떨린다”고 말했다.

박신양은 이곳에서 지난 19일부터 내년 4월까지 첫 개인전을 연다. 아트센터 3개 관을 모두 쓰는 대규모 전시다. 지난 10년간 그린 100여 점을 선보인다. 1층에서 박신양이 합판을 다듬어 캔버스를 짜고 밑작업을 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종의 공연이다. 박신양은 드라마 ‘파리의 연인’(2004), ‘동네 변호사 조들호’(2016·2019), 영화 ‘편지’(1997), ‘범죄의 재구성’(2004) 등으로 스타가 됐다. 대중은 “애기야, 가자”던 박신양에게 열광했지만 그는 애기가 아니라 얘기를 원했다. 예술 얘기, 사는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사람들이 열광하던 박신양은 제가 아니죠. 캐릭터였을 뿐. 저도 제가 누군지 모르는데 다들 저를 어떻게 아시고 좋아하시는지. 괴로웠습니다.”

수년간 갑상선항진증과 저하증에 시달리며 몸도 피폐해졌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안동에 작업실을 차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캔버스를 마주할 땐 저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었어요.” 그는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무작정 시작해 시행착오를 거쳤다. 간혹 작업실로 손님이 찾아왔다. 다들 같은 질문을 했다. “박신양씨가 진짜 그린 거 아니죠?” 혹은 “얼마에 파실 건가요?”였다. “저는 그림으로 교감하고 싶은데, 가짜라고 하고, 돈 얘기하고. 트럭에다 싣고 나가 장터에다 그림을 내놓을까 생각도 했어요. 어떻게든 제가 표현하려는 걸 느껴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간절한 뜻을 담아 전시를 열고 책도 냈다. 무대와 관객 사이 약속된 벽을 뜻하는 ‘제4의 벽’(민음사)이다. 작업은 새벽에 주로 한다. 새벽 4~5시쯤 되면 회의가 밀려든다고 했다. “내가 지금 뭐 하나,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그만두고 싶어져요.” 다시 붓을 들게 하는 것은 관람객이다. “며칠 전 중학생이 보러 왔는데 ‘사각 틀 안에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고 하더라고요. 우와, 통했다. 너무 기뻤어요.”

연기도 계속한다. 코로나로 개봉이 조정된 영화 ‘사흘’(감독 현문섭)이 곧 선보인다. 죽은 딸의 사흘장을 치르는 동안 악마가 깨어나면서 벌어지는 사투를 다룬 작품이다. “공포영화지만 바탕에 아버지와 딸의 사랑이 있어요. 그래서 선택했어요.” 딸 승채(20)씨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다. 아빠에게 “이것도 그려보라”며 말과 거북이 사진을 건네주며 응원한다고 했다. “이젠 영화 속 캐릭터도 굳세게 감당할 수 있어요. 그림을 통해 얻어낸 해답을 연기로 풀어내면서 스크린에서도 관객을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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