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노인 4만2000명, 주 6일 일해도 월 16만원
대구에 사는 정모(82)씨는 16년째 폐지를 모으고 있다. 주 6일,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면서 월 10만원 정도를 번다. 기초 연금 30만원을 더한 40만원이 한 달 생활비다. 혼자 사는 단칸방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하루 두 끼만 먹는다. 자녀들과는 연락이 안 된다. 지병이 있지만 돈이 없어 통증이 심할 때만 타놓은 약을 먹는다.
보건복지부는 28일 정씨처럼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폐지 줍는 노인’이 전국에 약 4만2000명에 달한다는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복지부는 “이들은 하루 평균 5.4시간, 주 6일 일하고 한 달에 평균 15만9000원을 버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시간당 최저임금(9620원)의 12.7%인 1226원을 버는 것이다. 올해 6월부터 12월까지 전국의 폐지 수집 노인 1035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다.
이번 조사 결과는 한국의 노인 빈곤 상황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사례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7개 회원국의 ‘2020년 노인 빈곤율’을 발표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3배가량 높았다.
OECD가 노인 빈곤율을 발표한 2009년부터 한국은 12년째 계속 40%대의 압도적 빈곤율을 보이며 1위를 기록 중이다. OECD는 65세 이상 노인의 가처분 소득이 전체 중위 소득의 50% 미만이면 ‘빈곤 노인’으로 분류한다. 노인 빈곤은 우울증 및 자살률을 높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10만명당 자살자 수)은 26명이었지만 80세 이상 자살률은 61.3명으로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높은 자녀 양육비를 노인 빈곤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한다. 중국 인구·공공 정책 연구 기관 위와인구연구소는 올 5월 “한국에서 자녀를 18세까지 키우는 데 3억650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며 “이는 1인당 GDP(국내총생산)의 7.79배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과도한 사교육비가 주된 원인”이라고 밝혔다. 대부분의 부모가 소득을 자녀 양육에 쏟아붓고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년기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부실한 사회 안전망도 문제다. 국민연금은 1988년 도입됐다. 초기 대상은 1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였다. 1999년에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됐다. 국민연금 급여인 노령연금의 경우 최소 10년 이상 가입해야 받을 수 있다. 과거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거나 자영업에 종사했던 노인은 노령연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사각지대가 많다. 한 달에 100만원 이상을 받는 노인은 40% 정도에 불과하다.
기초 연금의 경우, 하위 소득 70% 노인까지 월 32만원(단독 가구 기준)을 지급한다. 현실적으로 국민연금과 기초 연금을 합해도 노인 빈곤 기준선인 중위 소득 50%(약 130만원)를 넘기기 어렵다. 노인이 장시간·저소득 노동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한국에서 노인 빈곤 문제는 점점 악화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은 2025년 65세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이 되는 초고령 사회 진입이 확실시된다. 정순둘 이화여대 교수는 “기초 연금이 저소득층 노인에게 더 많이 돌아가도록 선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최혜지 서울여대 교수는 “생활고가 심한 빈곤 노인은 국민기초생활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부양자 소득 기준 하향 등)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일자리도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 83만개 정도의 노인 일자리 중 약 61만개(73%)가 공공 일자리다. 소득이 높은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려면 민간 기업 연계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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