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다시 극장에서 새해를
크고 작은 극장마다 음악회 일정이 빼곡하다. 송년, 신년, 제야 등 어떤 이름이 붙든 연말연시에 열리는 음악회에 모인 사람들은 가는 해를 향한 아쉬움을 음악으로 위로하고, 오는 새해를 음악으로 기쁘게 맞이할 것이다.
당연하게 여기면 소중함을 잊기 쉽다. 불과 1년쯤 전만 해도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코로나 대유행에 극장은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고, 연주자들이 밀집해 앉아야 하는 클래식 공연은 취소되기 일쑤였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년 음악회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 필)의 공연도 무관중으로 열려 인터넷을 통해 중계됐다.
다시 극장에 모여 함께 공연을 보고 환호하며 손뼉을 칠 수 있을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모두가 극장의 위기를 말하던 그 시절, 온라인으로 공개한 베를린 필의 무관중 공연을 이끈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아무리 어려운 현대 음악을 연주해도 객석에 몇 명은 있었는데 오늘처럼 아무도 없기는 처음이다.” 영국인다운 냉소적 농담에 이어 래틀은 관객도 없이 음악회를 여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호를 보내야 했다. 전 인류가 위기에 있기 때문에, 예술과 음악은 더욱 필사적으로 중요하다는 신호다.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음악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이제 다시 극장에 모여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수 있게 된 지금, 음악이 가진 원초적 힘을 생각한다. 다양한 악기가 각자의 선율과 리듬을 직조하고, 다양한 톤의 목소리가 화음을 쌓아올려 음악을 빚어낸다. 서로 다른 개성이 모여 전체의 힘이 되고, 한 발씩 물러서 화합하고 어우러지며 웅장한 음악은 탄생한다. 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가 되어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느끼고 경험하며 위로받는다. 아쉬움은 흘려보내고, 새로 맞이할 희망을 공유한다.
신년, 송년, 제야, 어떤 이름이라도 좋다. 극장에 모여 여러 소리가 만나 빚어낸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연말연시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관객이 모여 공연에 귀 기울이고 환호하고 손뼉 칠 때, 그 극장에서 축제는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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