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신간돋보기] 다양한 계층 여성들의 서사 外
# 다양한 계층 여성들의 서사
나무 되기 연습- 고명자 시집 /걷는 사람 /1만2000원
2005년 ‘시와 정신’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고명자 시인이 ‘술병들의 묘지’ ‘그 밖은 참, 심심한 봄날이라’에 이어 세 번째 시집을 냈다. 대담한 상상력과 짙은 호소력이 담긴 고명자의 시는 이번 시집에서 더욱 밀도 있게, 리드미컬하게 흐른다. 평화는 없고 폭력과 착취가 남발하던 스무 살 무렵 여공,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위해 국수를 삶는 어머니, 파도 소리 마냥 쟁쟁한 자갈치 아지매들의 목소리,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온 이주 여성 노동자 등 이 시집에 놓인 개개 여성의 서사가 특히 눈길을 끈다.
# 일제강점기 청춘들 삶의 고뇌
경성 브라운- 고예나 장편소설 /산지니 /1만8000원
부산 출신으로 2008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한 고예나 소설가의 역사소설. 1919년 카페 ‘경성 브라운’을 중심으로 사랑과 배신, 신념을 위한 투쟁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여급 홍설과 혁명의 기회를 노리는 독립운동가 요한, 요한을 뒷받침하는 궁녀 출신 기생 명화, 친일파 이완용의 손자인 한량 미스터 리.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독립운동 과정을 엮었다.
100년 전, 삶의 방향을 치열하게 고민한 당시 청년들의 마음과 나라를 빼앗기고 핍박받는 당시 조선인들의 생활상을 풀어냈다.
# 미술작가가 그려낸 환경문제
나뭇잎 일기 : 열두 달의 빛깔- 허윤희 글 /그림 궁리 /1만9800원
나뭇잎 하나와 함께 삶을 돌아보는 화가 허윤희. 산책길에서 만난 한 잎 나뭇잎을 그림으로 옮기고 짧은 글을 곁들인 ‘나뭇잎 일기’를 2008년부터 써왔다. 이 책은 초봄에서 겨울로, 다시 초봄으로 이어지는 열두 달 자연 리듬에 따라 나뭇잎들의 순간을 담았다. 그림마다 연필로 눌러 쓴 손 글씨 일기가 뒤따른다. 화가의 손길은 멸종위기식물과 사라져가는 빙하에 닿고 있다. 어느 날 푸르던 나뭇잎이 폭염으로 타 들어가는 모습을 본 것이 계기가 돼,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환경문제에 대한 논의를 미술작가의 시선에서 풀어냈다.
# 소리 내 읽어봐요, 사랑의 이유
사랑 사랑 사랑하는 이유- 므언 티 반 글 /제시카 러브 그림 /보물창고 /1만6000원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얼까. 엄마가 아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아기이기 때문이다, 손녀가 할머니를 사랑하는 이유는 할머니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다리가 아픈 손녀를 위해 할아버지가 발걸음을 맞추어 함께 걸어가 주었기에, 손녀는 할아버지를 사랑한다. 데뷔작 ‘바닷가 마을에서’로 뉴욕타임스의 찬사를 받은 베트남 난민 출신 작가 므언 티 반과 ‘볼로냐 라가치 상’ 수상 작가 제시카 러브의 멋진 협업 그림책에 사랑이 가득하다.
사랑을 묻고 대답하는 다양한 인물이 차례로 등장한다. 두 사람이 소리 내어 읽으면 좋겠다.
# 안전사회 위해 과학이 할 일
재난에 맞서는 과학- 박진영 지음 /민음사 /1만7000원
“환경재난과 피해를 더 떠들썩하게 말하자. 그 과정을 거쳐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자. 그런 마음으로 나는 환경재난을 보고 듣고 읽고 쓴다.” 학계와 현장을 오가는 환경사회학 연구자 박진영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관한 오랜 연구 결실을 책으로 냈다.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해 우리가 만들어 갈 과학은 어떤 모습인가. 이 책은 정치·자본으로 환원되지 않는 과학의 고유한 특성을 환경사회학과 과학기술학 연구를 통해 보여준다. 재난에 맞서는 오늘의 과학을 이야기하자는 강렬한 선언!
# 차별사회 해독제는 ‘다양성’
인디아더존스 : 우리는 왜 차이를 차별하는가- 염운옥 외 지음 /사람과 나무사이 /1만9500원
성차별, 인종차별 등 혐오에 기반한 차별과 사회문제는 왜 생겨날까?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이를 다양성의 긍정적인 발현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개인의 취향이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차별을 치료하는 가장 뛰어난 해독제이다. 이 책은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에서 절체절명의 과제로 떠오른 다양성 담론에 관한 여섯 석학, 염운옥(사회학) 조영태(인구학) 장대익(진화학) 민영(미디어학) 김학철(종교학) 이수정(범죄심리학) 교수의 연구와 치열한 사고, 논쟁을 한 권에 집성했다.
# 뉴스가 잘라낸 전쟁의 이면
전쟁이 말하지 않는 전쟁들- 김민관 지음 /갈라파고스 /1만6700원
약 50일간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를 다녀온 JTBC 김민관 기자가 뉴스에서 잘라낸 목소리를 들려준다. 뉴스 보도 한 건의 분량은 2분 안팎. 취재 내용을 분량에 맞게 편집하는 과정에서 많은 장면이 잘려 나갔다. 저자는 우크라이나에서 25건의 뉴스를 내보냈지만, 자신이 마주한 좌절과 분노, 슬픔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었다. 진실은 임팩트가 부족하게 여겨져 뉴스거리는 될 수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매 순간에 남아 있었다. 전쟁은 선악이나 승패 같은 이분법으로 정리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다수의 고통임을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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