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11] 성탄절 불빛 속에서
성탄절 새벽에 울린 소리는 찬송가가 아니라 화재 경보였다. 아파트 이웃들이 부리나케 피하는 와중에 젊은 아버지가 목숨 던져 딸을 살려냈다. 일곱 달 난 아기 다칠세라 포대기로 감싸 안은 채. 부모와 동생 먼저 피신시키고 정작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한 이도 있었다. 그런 아득한 상황이 닥치면 어찌 할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는데….
입으로는 엔간해서 하지 않는 표현을 글로 쓰고 말았다. ‘농담을 던지다, 미소를 던지다, 눈길을 던지다’처럼. 말로 하자면 어색하기도 하려니와, 판에 박은 듯 ‘던지다’를 꼭 써야 하느냐는 궁금증이 든다. ‘질문하다, 농담하다, 미소 짓다, 눈짓하다’ 해도 괜찮을 법한데.
어딘가 거북한 표현이 이뿐인가. ‘조사하다, 전망하다, 빛나다’ 하면 그만인데 ‘조사를 벌이다, 전망을 내놓다, 빛을 발하다’ 하는 식으로. 영어 곧이곧대로 옮겨 버릇하느라 생겼을 법한 어색함은 제쳐놓더라도, 굳이 복잡하게 써야 하는지 갑갑하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긴장에 ‘끈’까지 달려 더 어수선하다.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이기에. 그냥 ‘내내 긴장했다’ 하면 너무 밋밋해 보일까 봐? 정 그러면 ‘긴장을 풀 수 없었다’ 해도 좋으련만. ‘다음 주 의견 수렴에 들어간다’와 ‘다음 주에 의견을 모은다’도 어느 쪽이 자연스러운지 생각해보자.
하물며 말이 안 되는 표현도 있다. ‘설전을 주고받다’에서 ‘설전(舌戰)’은 한자에서 알 수 있듯 말을 주고받으며 다투는 일. ‘말을 주고받는 다툼’을 또 주고받는다 하니 말이 안 될 수밖에. ‘말다툼하다’나 ‘말싸움을 벌이다’ 해야 이치에 맞는다. ‘대화를 나누다’도 마찬가지. 역시 말을 주고받는 일이 ‘대화’니까 ‘대화하다’ ‘얘기를 나누다’가 옳다.
그 성탄절 저녁, 어느 백화점 주변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했다. 50여 년 전 온 국민이 끔찍한 불구경을 한 곳 바로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조명 쇼가 야릇하다. 새해엔 부디 사람 해치는 불 말고 마음 밝히는 불만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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