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오후 2시에 더 붐비는 부산 지하철
“요즘 부산 지하철은 출퇴근 시간보다 오후 2시에 더 미어터진다.” 고향 친구는 동네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지하철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일자리가 없으니 출퇴근 인구도 줄어 아침저녁으로는 여유롭고, 낮에는 지하철 나들이 하는 어르신들이 동해선, 부산김해선을 타고 왕복 2시간 넘는 종착역까지 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출퇴근길 서울 ‘지옥철’에 적응해버린 나로선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러자 친구는 몇 년 뒤에는 노약자석을 늘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일반 좌석과 노약자석 위치를 서로 바꿔야 할 판이라는 우스개도 던졌다.
지방 소멸이나 청년 이탈이라는 말이 고향 친구들 피부에 와 닿은 건 자주 가던 대형 마트가 줄줄이 폐업하기 시작할 때였다. 부산의 대표적 중심가 서면마저 대형 마트 2곳이 내년 상반기 문을 닫는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부산에서 이미 문을 닫았거나 닫을 예정인 대형 마트는 7곳이다. 한 친구는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홈플러스가 있어서 장보기 편했는데, 최근 폐점한 뒤로 차로 20분 거리 마트까지 간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마트가 없어져도 배송비 때문에 쿠팡이나 컬리보다는 멀리 떨어진 식자재 마트까지 가는데, 가격이 싼 것도 아니더라”라고 했다.
악순환은 진작에 시작됐다. 마트 하나가 사라지자 그곳에서 일하던 계산원, 매대 직원, 푸드코트 직원 수백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일자리가 줄어드니 사람이 떠나고, 사람이 떠나자 마트를 비롯한 일자리는 더 줄어든다. 실제로 지난달 부산의 취업자는 작년 같은 달보다 1만4000명이 줄었다고 한다. 취업자 통계를 집계한 동남지방통계청 관계자는 “해운대 홈플러스 폐점 등 대형 마트 폐점 여파가 11월 취업자 수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부산의 경제활동인구인 15세 이상은 2013년 297만명에서 작년 293만명으로 10년 만에 4만명 가까이 줄었다.
‘제2의 도시’ ‘다이나믹 부산’이라 부르던 곳도 이런데, 다른 도시들은 오죽할까.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47년 전국 시군구 70%인 157곳이 소멸 위험 고위험 단계라고 한다. 지역을 탈출하려는 청년만 설득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한양으로’라는 말처럼 지역은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곳이라는 인식은 오래전부터 DNA에 박혀 있다. 인위적 노력 없이는 청년들을 붙잡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청년들이 지역을 빠져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다. 어떤 식으로든 기업들이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해야 한다.
떠나왔다고 남 일로 치부할 수도 없다. 지역이 역할을 못 하고 소멸하면 청년들은 더욱 서울로 올라와 인구가 집중될 테고, 집값이나 주차난, 교통 대란 같은 도시 문제는 더더욱 심해질 테니 말이다. 곧 출간 10년째를 맞는 책 ‘지방 소멸’(와이즈베리)의 저자 마스다 히로야는 저서에서 “도쿄가 인구를 빨아들이기만 할 뿐 재생산은 못 하는 블랙홀이며, 결국 지방에서 오는 인구도 감소해 일본은 파멸할 것”이라고 했다. 꽉 찬 서울과 텅 비어버린 지역, 과연 지역 청년들이 도착할 종착역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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