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쓸어 버리거나, 쓸려 가거나

최재혁 기자 2023. 12.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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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층 기대로 등판한 한동훈
총선서 바람 일으키겠다면 ‘김건희 특검’ 피하지 말고 代案 제시로 정면 대응해야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연합뉴스

한 달 전쯤 여권의 중진 정치인은 내년 총선을 전망하면서 “치열한 지역구 백병전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낮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사법 리스크’에 발목 잡혀 있으니, 여야(與野) 모두 두 사람을 선거 캠페인 전면에 내세우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었다. 또 “‘바람’이 불 기미가 안 보인다”면서 “여당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선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공감이 갔다.

이번 주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한동훈은 이 흐름을 바꿔보자는 생각인 것 같다. 취임사에서 선명한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과거 청산’과 ‘미래 준비’였다. ‘청산’은 민주당의 586 운동권 세대를 겨냥했다. 기후 변화, 인구 감소, 기술 변화 등 우리가 맞닥뜨린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586 운동권이라는 ‘과거’의 기득권 세력을 쓸어 버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한 위원장 행보도 이 프레임이 선거판의 ‘바람’으로 이어지도록 빌드업해 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여의도 문법’과는 다른 거친 표현으로 이재명 대표를 직격하는 것도 의도된 바일 것이다.

그러나 야당을 공격하는 것만으로 한 위원장이 원하는 ‘바람’이 불진 않는다. 국민의힘 내부의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1차 테스트’가 비대위원 인선이었는데 어제 발표된 비대위원 면면을 보면 변화의 욕구는 읽힌다. 이 변화는 주요 당직자, 공천관리위원회, 선거대책위원회 인선에 이어 궁극적으로 공천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장차관 출신이든,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출신이든 객관적 데이터와 당선 가능성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보다 중요한 문제는 한 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마주하게 된 ‘김건희 여사 특검법’ 대응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어제 ‘김건희 특검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고 한 위원장도 거기에 이견(異見)이 없다.

‘김건희 특검법’의 수사 대상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친문 검사’인 이성윤·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이 19개월 동안 탈탈 털다가 회사, 증권사, 주가 조작꾼 쪽만 기소한 사건이다. 증거가 없으면 무혐의 처분이 당연하나 김 여사에겐 아무런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 등의 재판에서 새 진술과 증거가 나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올 초부터 민주당과 정의당은 자신들이 컨트롤할 수 있는 특검을 마음대로 낙점하는 ‘김건희 특검법’을 총선용으로 준비해 어제 처리했다.

속이 뻔히 보이지만 민주당 의도는 통했다고 본다. ‘김건희’ 특검을 안 하면 불공정한 것이라고 하는 국민이 점점 늘어났다. 야권이 총출동한 인신 모독과 흠집 내기로 ‘비호감도’를 높이는 전략이 먹혔기 때문이지만, 김 여사와 관련해 이어진 크고 작은 논란에 대통령실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많다.

지금 한동훈을 무대로 올린 것은 “한동훈이라면 그 문제를 풀어낼 것”이라는 지지층 내부의 기대감이다. 이런 흐름을 외면할 때 한동훈에 대한 기대도 금방 푹 꺼진다. 보수층뿐 아니라 이번 총선의 판도를 좌우할 30대도 한 위원장을 주시하고 있다. 주택, 육아 등 대부분의 정책 현안은 30대의 문제다. 이들은 사안에 따라 여야 지지가 갈리는 ‘이중 심판론자’이기도 하다. 50대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보수층이 실망하고 30대, 50대가 돌아서면 오히려 ‘검찰 쿠데타’ ‘검찰 공화국’이란 역풍(逆風)이 불 수 있다. 한 위원장은 전에 “사회가 완벽하고 공정할 순 없다. 중요한 것은 공정한 척이라도 하고, 공정해 보이게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으로선 억울하겠지만, ‘김건희 특검’ 이슈는 어느 사이 그런 차원의 문제가 됐다.

한 위원장으로선 대체 특검법, 상설 특검 활용, 특별감찰관 임명, 제2부속실 신설 등의 대응책을 놓고 윤 대통령과 협의하는 것을 주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걸 못 한다면 ‘운동권 청산과 미래 대비’라는 구호는 허황해지고,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쓸려 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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