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미일 주도로 인도태평양조약기구 창설하자

최명상 前 공군대학 총장 2023. 12.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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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위협에 대비해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격인 인도태평양조약기구(IPTO, Indo-Pacific Treaty Organization) 창설을 제안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미·소 냉전 국제체제에서 유럽 국가들은 나토 결성으로 강력한 군사 대국 소련의 위협을 이겨내고 마침내 소련을 붕괴시켰다.

1944년 6월 미 아이젠하워 연합군사령관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으로 히틀러의 나치 독일을 패망시켰고, 1945년 8월 미국의 원폭으로 군국주의 일본을 항복시켰다. 하지만 소련 스탈린은 전 세계로 공산주의 영향력을 확대해 갔다. 아시아에서 일본 본토 분할 점령이 실패하자 한반도 38선 이북을 공산화했고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이 중국 대륙을 석권했다. 소련은 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유고슬라비아·루마니아·알바니아 그리고 동독까지 공산세력을 확산했다. 스탈린이 그리스와 튀르키예까지 공산화하려 하자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1947년 3월 ‘트루먼 독트린’을 선포했다. 미·소 냉전 국제체제가 본격화된 것이다. 이에 소련은 해체했던 국제공산당(COMINTERN) 대신 동유럽 위성국가들과 공산정보국(COMINFORM)을 창설했다.

조지 마셜 미 국무장관은 1947년 유럽 국가들에 대한 경제원조정책을 발표했다. 폐허가 된 유럽 국가들의 경제부흥으로 공산화를 막겠다는 것이다. 미국·영국·소련·프랑스 4국으로 분할 점령되었던 독일은 ‘마셜 계획’을 통해 경제 재건을 하기 위해 미·영·프 점령 지역의 통화를 도이치 마르크로 통합했다. 이에 반대한 스탈린은 베를린 봉쇄(1948.6~1949.5)를 단행했다. 서베를린으로 접근하는 육로를 차단함으로써 200만 서베를린 시민들을 완전 고립시킨 것이다. 제3차 세계대전으로 치솟을 위기였으나 미 공군의 대규모 생필품 공수작전으로 전쟁을 모면하고 서베를린 시민들을 기아 위기에서 구했다. 세계는 스탈린의 잔인한 야만적 행태에 격분했고 소련의 군사적 위협을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집단방위체제를 원했다. 미국·캐나다·영국·프랑스·서독·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 등 12국이 1949년 나토를 창설했다. 나토는 소련이 붕괴한 뒤에도 더 확대되어 지금은 31국이 되었고 가입을 원하는 국가가 계속 늘고 있다.

나날이 증대되는 중국 공산당의 위협에 세계는 불안하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극복할 강력한 집단안보체제가 필요하다. 아시아 지역에도 나토 같은 강력한 군사 집단기구가 있어야 한다. 얼마 전 별세한 헨리 키신저는 중공을 국제무대에 끌어내면 소련도 견제하고 중공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체제 전환은 고사하고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 인공섬을 만들어 영해라고 주장하고 자유항해를 방해하며 ‘중국몽’을 내세워 미국에 도전하고 있다. 이에 대비해 미국·영국·호주의 안보동맹 오커스(AUKUS)와 미국·일본·인도·호주의 안보협의체 쿼드(Quad)가 있지만 하루속히 통합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한·미·일 정상들이 인도태평양조약기구(IPTO) 창설을 서둘러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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