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75] 고달픈 시절에 뜨는 태양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2023. 12. 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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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고, 세상에는 두 임금이란 없다(天無二日, 人無二主)”는 말을 중국인들은 곧잘 쓴다. 하늘의 해에 견줬지만, 말하고자 하는 대상은 사실 뒤에 있다. 세상 가장 높은 권력자 말이다.

그래서 최고의 1인 권력을 자랑했던 마오쩌둥(毛澤東)에게 따라 붙었던 지칭이 홍태양(紅太陽)이다. 해가 뜰 때 붉게 물드는 동쪽 하늘을 동방홍(東方紅)이라고도 적어 마오쩌둥을 기념한다. 3대 세습의 김일성 왕조도 역시 그와 비슷하다.

해를 가리키는 일(日)은 한자 초기 세계에서도 일찌감치 등장한다. 둥그런 테두리, 또는 그 안의 한 점이나 선으로 표기하는 꼴이었다. 태양을 가리켰던 이 글자는 결국 훤히 밝은 대낮, 지내는 시절, 급기야 제왕의 권력에까지 의미를 넓혀간다. 접미사 격인 자(子)를 붙이는 경우가 있다. 우리의 쓰임은 거의 없고 중국은 자주 쓴다. ‘일자(日子)’라고 적는 방식이다. 해와 달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시간의 흐름을 가리킨다. 우리식으로 풀자면 ‘나날’이다.

이 단어는 때로 삶의 수준에도 이어진다. 좋은 무렵을 말할 때는 호일자(好日子)다. 시간의 흐름에 대충 섞여 나날을 보낸다면 혼일자(混日子)다. 고생이 아주 심한 시간을 보낸다면 고일자(苦日子)다. 그저 세월 보내기면 과일자(過日子)다.

요즘 중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은 긴일자(緊日子)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고달픈 세월을 지칭한다. 앞으로 닥칠 팍팍한 삶을 예고하는 말이다. 어느 때에 이르러 부진을 전혀 면치 못하는 중국 경제 분위기를 설명한다.

권력의 자장(磁場)과 그 중심을 바라보는 눈이 발달한 중국이다. 좋은 임금 만나면 잘 살고, 그러지 못하면 고생이라는 오랜 교훈 때문이다. 허리띠 바짝 졸라매야 하는 요즘 시절에 중국인들은 제 머리 위에 뜨는 저 붉은 태양을 어떻게 바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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