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모르면 물어라” 죽는 날까지 바라봤던 선승의 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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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할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부처님이 세상을 위해 주먹손을 쥐지 않았듯 한 번도 주먹손을 쥐어보지 않았다. 주먹을 펴 진리를 말하되, 그것이 진실이라면 본래 무(無)한 것이었다" 스님이 "유시(오후 5시∼7시)냐"고 물었다.
제자가 그렇다고 답하자 스님은 비로소 자신이 예견한 입적 날짜와 시간에 맞춰 입적했다.
사회 전반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 오대산 수도원 만들고, 화엄경을 번역한 탄허스님의 교육 방식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으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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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전부터 입적까지 일화 담아
세계정세·자연재해 위기 예견
수행 위해 돌가루 끓인 죽 먹어
“이제 더 할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부처님이 세상을 위해 주먹손을 쥐지 않았듯 한 번도 주먹손을 쥐어보지 않았다. 주먹을 펴 진리를 말하되, 그것이 진실이라면 본래 무(無)한 것이었다”
스님이 “유시(오후 5시∼7시)냐”고 물었다. 제자가 그렇다고 답하자 스님은 비로소 자신이 예견한 입적 날짜와 시간에 맞춰 입적했다. 1983년 6월 5일 오후 6시 15분의 일이었다. 열반송을 남겨달라는 제자에 부탁에 ‘일체무언(一切無言)’이라는 말을 남기고.
최고의 학승이자 선승으로 평가받는 탄허스님 탄생 110주년 열반 40주년을 맞아 스님의 일대기를 담은 백금남 작가의 장편소설 ‘천하의 지식인이여 내게 와서 물으라’가 나왔다. 탄허스님은 10만 장이 넘는 번역 원고를 남겼음에도 자신의 사적인 기록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 백금남 소설가는 “만행과 정진을 통해 깨침에 이르는 과정이 나를 사로잡았다”고 말하면서도 “어린 시절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세세히 재구성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작가는 탄허스님의 제자인 서우담 거사의 도움을 받아 관련 자료를 모으고 5년간 글을 써내려갔다고 한다. 탄허스님의 법어집 ‘부처님이 계신다면’과 ‘주역선해’ 등을 참고했다.
탄허스님의 어린시절부터 상원사를 지켜낸 스승 한암과의 일화 등이 술술 읽힌다. 일반적인 소설의 구조 보다는 여러 일화들을 모아낸 단편집이라는 느낌도 든다. 젊은 승려의 고뇌와 갈등은 우회적으로 풀면서,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논한다.
탄허는 시주은혜가 무서워 돌가루를 끓인 죽으로 연명했고 추운 겨울에도 함부로 불을 지피지 않았다. 승이 시주의 은혜를 무겁게 여기지 않으면 수행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외에도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의혹을 풀지 못해 방황하는 청년 유생의 모습이나, 갈등과 방황을 끝내고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에서의 의식적 변화 과정 등도 그려내 스님의 인간적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월정사 조실을 역임한 탄허스님은 유학부터 노장사상까지 유불선을 회통한 동양학의 대가였다. 출가 전 주역을 500번이나 읽었고 김일부의 ‘정역’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아 각종 예지도 남겼다. 스님답지 않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작가는 자신의 입적 날까지 예언한 스님의 일생을 통해 왜 그가 화엄학에 그토록 몰두했는지 이해한다.
탄허의 예지는 술(術)의 경지가 아니라 도(道)의 경지에 입각한 것으로, 화두는 곧 화엄이었고 선이었다. 중생이 당할 고초를 생각하면 예언해야만 했다.
한국전쟁, 미국의 베트남전 패전,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박정희 대통령 사망 등 그의 예견은 대부분 실제로 일어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또 역학으로 세계 정세를 풀어내며 자연재해의 심각성을 언급한 부분은 오늘날 기후위기에 중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말세적 현상은 있겠지만 그것은 ‘종말’이 아닌 ‘성숙’이라고도 표현한다. 지축의 바로 섬과 중국과 러시아의 분쟁, 대한민국의 통일까지 예견했으니 이는 더 두고 볼 일이다. 국문학자 양주동은 탄허의 강연을 듣고서는 “장자가 다시 돌아와 자신이 쓴 책을 설해도 오대산, 그 지혜로운 호랑이를 당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사회 전반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 오대산 수도원 만들고, 화엄경을 번역한 탄허스님의 교육 방식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으라’는 것이었다. 입적 열흘 전까지 경전을 번역했던 탄허는 모르면서 묻지 않는 자를 경멸했다. 알고 버리는 것과 모르고 버리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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